[김창식의 다시본 명산] 불가의 산 ‘치악산’ | 뉴스로

[김창식의 다시본 명산] 불가의 산 ‘치악산’

우리나라 5대 악산 중 하나이며 차령산맥에서 가장 높고 큰 산으로 1984년 12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치악산(1,288m)은 원래 적악산(赤嶽山)으로 불리다가 상원사의 꿩의 보은설화로 인해 이름이 바뀌었다.

치악산 비로봉/ 출처- 치악산굴립공원

주봉(정상)인 비로봉과 남쪽 끝에 우뚝 솟은 남대봉(일명 망경봉 1,189m)이 14km의 환상적 능선으로 이어진다.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고 고산다운 면모를 갖추어 광활한 산역이 각종 동식물의 서식처가 되고 있으며, 많은 사적과 함께 갖가지 전설이 서려있는 명산이다.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친다고 할 정도로 험한 산으로 알려진 것은 구룡사에서 비로봉까지 5.7km의 험로가 악산의 역할을 한 것 같다. 실제 능선길은 순하고 아기자기한 정취가 뛰어나고, 특히 겨울의 설경과 온 산을 덮는 가을 단풍은 많은 사람에게 홍진으로 인한 현대병을 치유해 주는 무릉도원이라 하겠다.

화강암 석질로 날카로운 뾰족함에 기가 넘치고 활력이 넘치는 암산(岩山)이다. 유적지로는 해미산성, 영원산성, 금두산성이 있고 사찰은 상원사, 구룡사, 석경사, 국형사, 영원사, 입석사, 보문사 등이 산재돼 있다.

명소는 구룡폭포, 세렴폭포, 거북바위, 범바위, 용바위 등이 있고 능선과 연결된 골은 영원골, 범골, 상원골, 사다리병창, 밤나무골, 신막골이 있다. 범골은 산목련 군락지로 개화시의 풍경은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룬 절경으로 하나의 선계를 이룬다.

상원사와 구룡사에 얽힌 유래와 전설은 흥미롭다. 먼저 원주시를 기점으로 태백산의 줄기로, 병풍과 같이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남쪽 남대봉(南臺峰 1,181.5m)직하에 자리한 상원사에 얽힌 전설이다.

상원사 꿩의 전설
경북 의성의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적악산의 오솔길을 가다 구렁이 한 마리가 꿩을 휘감고 있는 것을 보고 구렁이를 죽여 목숨을 구해 주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선비가 외딴 산골의 오두막을 발견하고 하룻밤 묵어가기를 부탁하였는데, 그곳에서 아리따운 여인의 정성스런 저녁 대접을 받고 잠을 청하였다.

그런데 한밤중에 잠을 깨어보니 구렁이 한 마리가 선비의 몸을 칭칭감고 있는 것이었다. 그 구렁이는 선비가 낮에 죽인 수컷의 복수를 하려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둔갑했다가 선비가 잠든 틈에 구렁이로 변신한 암컷이었다. 살려달라는 선비의 호소에 첫 닭이 울기전에 상원사의 종이 세 번 울리면 살려 주겠노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폐사된 지 오래 되어 아무도 없는데 종이 울릴 것을 기대하기란 가망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새벽녘에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종소리가 세 번들려오고, 구렁이는 약속대로 몸을 풀고 선비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길을 떠난 선비가 상원사를 찾아가자 먼지 낀 종 아래 머리가 깨진 꿩 세 마리가 죽어 있었다. 낮에 선비 덕분에 목숨을 건진 꿩이 보은의 종소리를 울린 것이었다. 그 후부터 적악산은 꿩 치(稚)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상원사 법당 벽에는 선비의 몸을 구렁이가 감고 있는 그림과 꿩이 머리로 종을 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종은 상원사에 보관 중이라 전한다.

명산 치악산을 종주(23.8km)하기 위해 무박 등정길에 나섰다. 가을비가 며칠 동안 지칠 줄 모르고 쏟아 붓다가 남부는 비가 멈추고 강원도는 비가 온다는 예보에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잡힌 일정을 강행하였다. 뜬눈으로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바라보며 도착(새벽 2/30)한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는 다행히도 비는 멈추었으나 잔뜩 찌뿌린 하늘로 심술궂은 모습이다.

치악산 구룡계곡/ 출처- 치악산굴립공원

삼라만상이 고이 잠든 성남리 상원골(上院谷)은 불어난 계곡물이 사납게 바위를 후려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어둠으로 짓눌린 숲속은 칠흑같은 암흑의 세계라 하겠다. 성난 물소리에 귀청이 멍멍해 진다. 배낭을 챙기고 손전등을 켜고 산로를 찾아 야간산행을 시작했다. (새벽 3시) 초입에서 산중턱까지는 임도로 새벽길 걷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정적을 깨뜨리는 요란스런 물소리를 들으며 협곡 깊숙이까지 여섯 개의 철다리를 건널 때마다 교량 밑으로 굽이쳐 흐르는 급물살의 흰 물꼬는 지침이 없다. 계곡을 벗어나 상원사 1km 못미처 이정표를 만났다. (4/30)

어둠이 차츰 물러서는 것 같으나 짙은 안개로 시야는 여전히 어둡고 밤이슬의 습도가 온몸을 짓누른다. 상원사를 지척에 두고 만난 쌍용수(샘터)에서 잠깐 휴식을 위하여 마신 약수는 갈증을 풀어준다.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불빛이 멈춘 곳에 은은한 목탁 소리가 들린다. 상원사 일주문에 닿았다. (아침 5/5, 산행시간 2시간5분, 성남리에서 이곳까지 5.2km이다)

치악산 상원사에 찾아온 봄/출처-치악산국립공원

꿩과 뱀의 전설이 깃든 신라 고찰 상원사는 56대 경순왕 때 무착 대사가 개창한 수도처로, 야간에 등산객의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글이 있으나 결례를 하고 사찰 경내에 들어가 삼배를 하고 대웅전을 기웃거려 보았다. 여 신도 두 명과 비구니승이 새벽기도 중이다.

손전등을 켜고 대웅전을 한바퀴 돌며 외벽의 벽화를 보고 대웅전안 벽화는 창문을 통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머물 시간도 없고, 새벽기도중이라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없어 돌아서야만 했다. 상원사는 남대봉의 품에 안겨 우리나라 세번째로 높은 곳에(해발 1,100m) 위치하고 있다. 자동차를 이용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위치해 조용한 참선 도장의 수도처로 일관해 온 것이다. 일주문을 나와 우측으로 돌아 남대봉을 향했다. (5/10)

어둠을 타고 옮긴 발길은 영원사 가는 갈림길을 벗어나 상원사를 품고 있는 남대봉 헬기장에 도착했다. (5/43) 종주 주능선이라 하겠다. 어둠이 깔린 주위는 지척을 분간키 어렵다. 넓은 평지 헬기장은 조망이 좋은 곳이다. 숨을 돌리고 조금 더 가서 삼각점이 박혀있는 남대봉 정상은 어둠과 숲으로 병풍을 쳐 놓아 계속 직진해야만 했다. 주능선 길은 산행로가 잘 닦여져 있고 어둠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해 답답함도 걷어지고 걸음걸이도 바빠진다. 억새 평전 금두고원에 도착했을 때는 시야가 트인 아침이다.

고원은 헬기장을 갖춘 넓은 평원으로 억새가 둘러싸여 금빛으로 율동한다. 짙은 안개가 조망을 흐리게 하여 아쉽다. 사방으로 눈을 돌리면 산마루 주변은 구름이 가렸지만 산로를 중심으로 핏빛을 발하는 단풍잎을 이곳에서 보게 되어 마음이 환하게 열린다. 고원의 넓은 쉼터는 쉬어가라 잡지만 뒤돌아 볼 겨를도 없이 향로봉(1,042m)에 도착, 아침식사를 했다. (7/15)

이른 아침 고산지대의 찬 기운에 휴식으로 머무는 동안 얼룩진 땀방울이 냉기로 온 몸에 배어든다. 40여 분의 휴식을 끝내고 나니 새로운 힘이 난다. 향로봉을 뒤로 하고 폭신한 능선길을 따라 바쁜 걸음을 옮겼다. 시야는 투명치 않으나 산로 주변 색색의 가을 단풍이 눈을 시리게 하고 연노랑 단풍잎은 풍채가 이색적이다.

억새로 휘감은 산마루가 낭만의 능선으로 만들어 놓은 고둔치에 도착했다.(8/35) 다시 오르막길을 달리다 971.2m봉을 마주했다.(8/50) 이곳 역시 억새밭으로 둘러쳐 놓았다. 원주시내가 직선으로 보인다. 이곳은 패러 글라이딩 한국 활공협 제1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초원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땀방울을 식게 한다. 밤새 찬 기운에 무거웠던 몸도 아침햇살에 가벼워지고 곳곳에서 뽐내는 단풍의 고귀한 자태에 마음도 가벼워진다.

한참 달리다 원통재를 만났다. 시원한 계곡물을 들이켰다. 속까지 시원스럽다. 원통재를 지나면서 가파른 길이 연이어진다. 온몸이 삽시간에 땀으로 젖는다. 입석대 갈림길까지는 오르막의 연속으로 숨가쁘다. 마음은 빨리 가고 싶지만 몸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고달픔을 이겨내며 한발 한발씩 오르다 보니 맥이 빠진다. 그러다가 현란한 단풍의 전시장이 다가오면 매료되어 이내 피로를 잊게 된다. 자연이 조제한 영약이라 하겠다. 입석대 갈림길을 지나니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그토록 밤을 지새우며 온 치악산 종주길이 운무에 조망을 망치고, 보슬비마저 가세하니 맥이 풀린다고 하겠다.

멀리 운무 속에 우뚝 솟은 비로봉을 향했다. 길고 먼 능선, 낙엽으로 메운 끝없는 평원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구절양장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이 누군가를 발견하게 된다.

산정에 못미처 갈림길 안부에 왔을때는 빗방울이 굵어진다. 좌측이 계곡길 가는 길이다. 비를 맞으며 철난간을 디디고 힘겹고 지루하게 올라온 산정 비로봉(1,288m)은 구름이 시야를 덮고 비는 촉촉히 내려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든다. (11/15)

치악산 비로봉 정상 / 출처-치악산국립공원

산정에서 가장 유명한 돌탑 세 개를 보게 된다. 1964년 용창중이란분이 전국의 돌을 모아 지극정성으로 쌓았다는 세 개의 돌탑은 북쪽에 칠성탑, 가운데 신선탑, 용왕탑 순이다. 명물로 등장한 치악산의 상징이라 하겠다. 이 비로봉 돌탑은 치악 8경 중 하나다.

치악 8경(비로봉돌탑, 상원사, 구룡사, 성황림, 사다리병창, 영원산성, 부곡계곡, 입석대)은 자연경관과 자연문화재 자원으로 이루어진 명소로 절경의 동악 명산이 영겁으로 흘러온 것이다.

산정에서는 비를 피해 하산하기 바빴다. 급경사를 이룬 사다리 병창으로 신선탑과 용왕탑 사이로 난 험로를 내려갔다. (11/20) 연중구룡사에서 사다리 병창길을 약 50만 명 가까이가 이용한다. 스릴감은 물론,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펼쳐지는 조망의 쾌감과 다리근육을 지치게 하는 아슬아슬한 난간길이 스릴을 배가시킨다.

병창의 풍경 조망은 가히 환상적이다. 치악산은 전형적인 육산이지만, 사다리병창의 험난한 코스를 두고 산꾼들이 치가 떨리고 악에 받친다고 한 것이라 생각되나 실제로 험난한 코스는 길지 않고 생각한 규모보다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겠다.

비를 맞은 철난간과 돌은 미끄러워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치악산 구룡 비로봉 사다리병창길 / 출처-치악산국립공원

하늘도 무심치 않았는지 비가 멈추고 갑자기 햇빛이 나기 시작한다. 붉게 물든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치악산의 절승을 이곳에서 만끽한다. 멀리 봉우리 사이로 운무와 숲속에 핀 오색 단풍은 하나의 그림으로 풍경화를 이루고 있다. 암봉미의 준수함과 아흔 아홉 가닥이라는 깊은 계곡과 능선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장엄한 파노라마를 엿볼 수 있다. 사다리로 연이어진 험준한 병창길을 구비 구비 돌며 숨막히는 길을 악전고투 끝에 벗어나 쇠다리교에 닿았다. 우측 100m 거리에 세렴폭포가 있다. 폭포는 보잘것없지만 사다리병창 길목 기점에 자리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구룡사로 하산하는 길목은 넓지만 수목이 우거져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구룡사계곡에 넘실대는 청정수를 바라보며 숲 터널을 지나 구룡사에 들러 참배하고,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서 길고 긴 1박2일의 여정을 마감했다.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미끄러운 길을 오르느라 산정에서 여기까지 무려 3시간이 소요되었다. (총 산행시간 11/30)

구룡사(龜龍寺)
비로봉(산정) 북쪽 골짜기 맑은 계곡을 끼고 이어진 울창한 노송림 가운데 자리하며, 치악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8년 (668년)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전한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던 연못에 세운 대웅전은 그 건축양식이 조선조 숙종 이후, 영조 또는 정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던 연못을 메워 법당을 세웠다는 전설에 따라 구룡사라 하였으며,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갈 때 눈이 멀어 뒤에 남은한 마리가 살던 연못을 구룡소라 한다. 소는 구룡사 왼쪽 계곡 초입에 작은 폭포가 깊고 맑은 웅덩이로 떨어지고 있으며 소 가장자리에 다리가 놓여 있다. 대웅전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 대웅전 앞 보광루 2층에 깔려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멍석이 있다. 몇 백년이 지난 이멍석(5~7m)은 세 사람이 3개월에 걸쳐 완성 한 것인데 훼손된 부분도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상원사에서 바라본 치악산 운해 / 출처-치악산국립공원

다시 돌아본다. 치악산은 전설의 산, 불가의 산으로 동악명산(東岳名山)이라 하여 수많은 고승대덕들의 수도처가 되어왔고 한국의 최초 신소설 작가인 이인직(李人稙 1908년)은 치악산을 배경으로 한 긴 장편에‘ 연극 신소설’ 이름을 붙여 발표하였다.

특히 겨울의 설경, 만추홍엽의 절경, 봄·여름의 수림과 계곡의 풍광 그 어느 것 하나 감탄을 멈출 수 없는 사계절의 명산이다. 꿩의 보은 설화와 영원산성 피의 격전지, 끝없이 펼쳐진 능선길의 파노라마가 원주 시민에게는 영원한 삶의 터전과 자부심을 갖게 하는 명산으로 남을 것이다.

교통편 : 원주시 – 구룡사, 성남, 시내버스가 수시로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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