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보기

[김창식의 다시본 명산] 지리산 종주 100리 길

민족의 영산(靈山),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면적은 440평방km로 동서가 60km,남북이 32km이다.

전남,전북,경남, 3개 도(道)와 구례,남원시와 하동,산청,함양군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거대하고 웅장한 산이다.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면적이 가장 크며, 설악산의 2.4배,한라산의 3.3배, 가야산의 5.6배,속리산의 7.3배나 된다. 소백산맥의 남쪽에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덕유산 국립공원과 이어지며 남한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높다.

지리산 천왕봉 / 출처-지리산 국립공원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10여 개의 1,500m 넘는 봉우리와 1,000m가 넘는 봉우리도 20여 봉이나 된다.그 밖에 90여 개나 되는 크고 작은 봉우리가 산악군(山岳群)을 이뤄 그 위용을 자랑한다.

화강반암(花崗班岩)으로 이루어졌고 기후는 산세가 높고 겹겹으로 둘러싸여 대륙성인 편이며,산림이 울창하여 강우량이 많고 계곡에는 항상 맑고 깨끗한 옥수가 흘러내린다.대표적인 계곡은 뱀사골계곡, 칠선계곡, 한신계곡, 심원계곡, 피아골계곡, 구룡계곡, 화개천계곡,백무동계곡,달궁계곡 등을 들 수 있고 폭포로는 구룡,선유,법천,불일,대성,용추,무재치기,칠선,오층폭포 등을 으뜸으로 치고 있다. 신라 진흥왕 5년(554)에 창건한 화엄사를 비롯하여 쌍계사,법계사 등을 중심으로 국보,보물 등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많을 뿐 아니라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1989년 12월에는 지리산의 소중한 자연을 보다 더 잘 보호하기 위하여 심원계곡과 피아골계곡 일대 등 20.2㎢를 자연 생태계 보존 구역으로 지정하여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육지공원 중 최대로 등산 애호가는 물론 국민 모두의 휴식공간이자 자연학습장으로서의 기능을 다하도록 올바르게 이용하여야 할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라 하겠다.

천연기념물로는 물들깨나무, 눗싸리, 어리병풍, 정향나무 등이 분포되어 있다. 일반종으로는 원추리, 철쭉, 고로쇠나무, 떡갈나무, 층층나무, 작살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곳에 따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10경

1.천왕일출(天王日出)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1,915m)에서 일출의 장관을 맞는 것

2.직전단풍(稷田丹楓)
삼홍으로 물든 피아골의 단풍이 절정을 이룬 선경

3.노고운해(老枯雲海)
운무가파도처럼몰려와산허리를감돌아흐르는노고단구름바다

4.반야낙조(般若落照)
하루의 여정을 마친 태양이 잿빛 노을속으로 사라지는 빛의 연회

5.벽소명월(碧宵明月)
지리산 등뼈의 한가운데인 벽소령에서 밀림과 고사목 지대에서 떠오르는 달맞이,태고의 정적이 사위를 감싼 신비의 경지

6.세석철쭉(細石 )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에 걸쳐 해발 1,600미터의 수십만평 세석고원에서 수만그루의 철쭉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낭만의 전경

7.불일현폭(佛日縣瀑)
쌍계사 동북쪽 3km 협곡,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의 백척단애에서 쏟아지는 백옥같은 물보라

8.연하선경(烟霞仙境)
세석고원과 장터목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괴석 사이로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고사목과 어울려 선경을 빚고 있다.

9.칠선계곡(七仙溪谷)
지리산 최대의 원시림지대로 옥류가 연이은 계곡으로 신비한 정적을 간직하고 있다.

10.섬진청류(贍津淸流)
맑고 푸른 섬진강과 은빛 백사장이 함께 어울려 지리산 산자락을 그림자로 드리우며 남해로 흘러가는 청류

지리 10경은 수많은 비경과 절경을 두고 그 가운데 대표적이고 특색 있는 자연경관 10곳을 말한다. 1972년 지리산 산악회장 우종수씨가 발표하면서 널리 알려졌으나,근래에 와서는 10경보다 더 좋은 명소가 있다고 한다. 바래봉의 철쭉을 비롯하여 뱀사골의 단풍과 계곡, 장터목의 운해,제석봉의 일출,써리봉의 기암기봉,대성폭포 등 자연이 빚어놓은 풍경이 10경을 능가하고 있다.

이순(耳順)의 초노(初老)가 동호인 몇명과 함께 지리종주 등정을 나선 것이 2004년 10월 20일이다.청명하게 드높은 초가을 하늘,날개를 달아 훨훨 날고 싶은 심정으로 출발점 인 성삼재(1,090m)에 도착했다.(09/00)

2박 3일동안 사용할 의복,식량,간식 등을 배낭 속에 가득 넣고 등 정길에 올랐다.드높은 가을 하늘의 향내음 맡으며 넓은 인도 양면에 붉게 된 단풍물결 따라 무넘기를 넘어 노고단(1,507m)에 왔다.(10시) 30만 평의 넓은 공원으로 지리산 신령인 선도성모(仙挑聖母)를 할미로 존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지리 10경 중 하나인 노고운해(老姑雲海)는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름바다를 말한다.멀리 남해바다에서 몰려온 구름이 주변의 산을 가리고 노고단 산허리를 감돌아 흐르면서 마치 속세를 떠난 듯 천상의 세계를 펼치며,특히 주변에는 계절에 따라 피는 진달래, 철쭉, 원추리꽃 등이 숨바꼭질하며 그려내는 자연의 조화로 신비로움이 깃든 곳이다.고개를 돌리면 지척에 둔 반야봉(般若峰 1,728m),멀리는 천왕봉과 연봉들이 가물거리고, 다도해의 옹기종기 마주보고 있는 섬들의 운해만리가 황홀경을 이룬다. 노고단을 떠나 잡목과 단풍숲을 헤치며 사면길을 돌면 돼지령에 발길이 닿는다.발길을 옮길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머리를 바라보며 산마루를 넘으니 임걸구,활촉 등의 쇠붙이를 발견한 것으로 보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샘에서 동쪽 30여m 떨어진 곳, 높이 10m의 절벽 아래에는 황듬(黃田里)에서 살던 황총각이 호랑이를 잡은「호랑이 막터」라는 바람막이 터가 오늘에까지 전해져 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수천 년을 두고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전해 내려온 지리산에 얽혀있는 전설과 일화는 수를 헤아릴 수 없다.임걸령 샘에서 갈증을 풀고 계속 능선을 타고 가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반야봉 가는 좌측길을 버리고 경남, 전남, 전북 3도의 경계가 합쳐지는 삼도봉에(三道峰 1,650m 일명 낫날봉) 닿았다. 넓은 바위봉에서 숨을 돌렸다. 지리의 아침햇살에 반사된 단풍잎은 화려함을 넘어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화개재로 가는 길목은 급경사를 이룬 협곡의 험로인데 나무계단을 수백 미터의 거리에 551개나 설치하여 한계단 한계단 밟고 내려가니 지루할 정도로 길게 뻗었다.계단을 지나 돌아서 화개재에 도착했을 때 우측 연등골엔 피바다를 이룬 단풍이 절정이다.(12/30)


지리산  노고단의 아침 / 출처-지리산 국립공원

노고단에서 이곳까지 10km온 것이다. 화개재(136m)는 주능선상 에서는 작고 잘룩한 허리이다. 헬기장까지 갖춘 산마루인데 남쪽으로 화개마을이 바라보였던 것에 연유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경남과 전북의 도계(道界)이며 하동군 화개면과 남원시 산내면의 경계지점으로 예부터 산마루를 넘나들면서 상업이 이루어진 곳이다.

화개재에 올라 긴 능선뼈를 타고 우측 칠불능선과 마주치는 토끼봉(1,534m)에 닿았다. (1/15) 토기봉을 둘러싸고 핀 산국화 등 야생화의 미소는 참으로 애띠고 아름다웠다.밋밋한 초원지대로 철쭉의 관목지인 토끼봉은 예부터 식용산채인 지보초가 군생하여 일명 지보등이라고도 부르며 구상나무 수림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하게 뻗은 지리의 산맥과 반야봉, 뱀사골, 화개골의 넓은 지역은, 가을 햇살 속에 화려한 빛으로 붉게 물든 단풍과 수해(樹海)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발길이 절로 멈추어진다.조망을 끝내고 연하천으로 향했다.

3km지점에 있는 연하천 가는 길은 울창한 수림의 능선길이 끝없이 펼쳐지고,능선따라 시원하게 전개된 시야는 숲과 하늘이 맞닿는다. 수많은 인파가 지나다닌 능선길은 비바람에 흙이 씻기어 산로가 많이 훼손되었다.크고 작은 능선을 넘어 연하천 1km지점을 앞두고 명성봉 허리 너덜겅 오른쪽 50m거리 바위 아래 깊숙이 숨겨진 석간수 ‘총각샘’을 찾았다. 호기심에서 총각처럼 마음이 젊어질까 하고 마음껏 물을 마셨다. 샘은 처녀들만 이용하라는 것인지 숨겨놓은 듯 은밀하고 깊숙한 곳에 있다.샘을 등지고 명선봉(1,586m)허리를 감돌아 가면 색색단풍으로 이어진 숲 속을 누비는 물길이 산장과 야영장을 겸한 연하천 산장을 뚫고 흐른다.(화개재-연하천 2/30)

연하천 산장은 남원시 산내면 부원리에 속하며 주위에서 샘물이 끝없이 솟아난다. (3/15) 조그마한 산장은 주목나무,구상나무,고사목들이 한데 어울려 주위의 풍경은 청명한 가을 날씨와 함께 살아 숨쉰다.

해맑은 가을 하늘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산야를 물들인 가을을 안고 뭉게구름도 손짓하며 지나간다.몸속을 파고드는 가을향기와 땀 내음 맡으며 숲속을 헤쳐가다 좌우로 확트인 돌출봉인 삼각봉(1,462m)에 닿았다.(3/45)

골 깊은 백무골과 화개골이 한눈에 펼쳐져 조망이 일품이다. 다시 내리막길을 달렸다. 가끔 나타나는 고사목의 풍치,마가목 열매들이 발갛게 익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기이한 바윗돌, 그 사이로 빠져들어가는 나의 육신,자연의 풍요로움,그 모두가 신선감을 안겨준다.이윽고 나타난 동자승바위와 엄마바위를 지나 내려가다 형제바위와 마주했다. (4/35) 왼쪽 능선 10여m 높이에 우뚝솟은 천연입석(天然立石)은 잘 살펴보면 두 개의 바위가 등을 맞대고 있다. 전설의 이 바위는 형제가 지리산에서 수도하던중 지리 선녀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오랫동안 등을 맞대고 서서 있다가 성불한 후 돌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의좋은 형제 바위틈에 끼여 함께 동고동락하는 청송의 굳은 절개도 자랑스럽다.반야봉 축소판이라고도 하는 형제봉(1,433m),정상석문을 지나 오르막 길을 오르면 비탈길을 가로막고 우뚝 솟은 바위밑 왼쪽에 남향한 연화동굴이 있다.

이곳에서 보면 산줄기와 화개골의 전망이 확 트여 무척이나 시원스럽고 아름답다.지리산 주능의 중심부인 벽소령으로 가는 능선길에는 군데군데 나타났다 사라지는 봉과 능선, 바위봉들이 끝이 없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세와 운무,그 속에 자신의 존재가 여기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종주 산행길은 힘들기도 하지만 여기서 얻어지는 소득은 천금과도 같다. 한적한 숲속 길따라 운무에 가린 풍경들을 라보며 가다 갑자기 앞이 확 트인 넓은 고개를 만나니 벽소령(碧 嶺 1,320m)이다.(5/15 성상재에서 이곳까지 8시간 15분 소요)

벽소령은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에 속한다. 지리산 등줄기의 한 가운데로 가장 낮은 허리이다. 벽소명월(碧 明月)이라하여 지리10경 중의 하나이다. 벽소명월을 두고 많은 작가들이 글을 썼다. 주위는 높고 짙푸른 산릉들이 첩첩이 둘러싸고 있고 달밤에는 그 달빛이 너무나 희고 서늘하게 맑아 푸르게까지 보인다 하여 벽소명월이라 한다. 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달은 천추의 한을 머금은 듯 차갑도록 푸른 유기(幽氣)마저 감돈다하여 벽소한월(碧 寒月)이라고도 부른다.

이 정경을‘달밤의 고요는 현묘한 유수로 몰고 가는 태고의 정적, 그것이라고 할까’라고 이종길 작가는 표현했다.

시인 고은(高銀)씨는 ‘어둑어둑한 숲 뒤의 봉우리 위에 만월이 떠오르면, 그 극한의 달빛이 천지에 부스러지는 찬란한 고요는 벽소령 아니면 볼 수가 없다.’고 찬탄했고 최화수 작가는‘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달은 천추의 한을 머금은듯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또 ‘태고의 정적이 주위를 감싸고 있어 현모한 유수의 경지가 된다.’고 했다.

산장은 새로 단장되어 온방시설도 잘 갖추어졌고 넓은 공간과 산자락에는 야영장도 있다. 150m거리에 있는 범뱀샘은 여름엔 얼음처럼 차고 겨울엔 온기마저 감도는 물이 쉬지 않고 솟아난다고 했다.

지금은 물탱크에 저장하여 PVC파이프에 연결해 놓았다.백수의 왕호랑이와 뱀의 꼬리가 얽힌 재미있는 전설을 가진 샘인가 하면 6·25전쟁 때는 령을 중심으로 빨치산들의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피비린내 나던 전장의 현장이 지금은 흔적을 살라먹고 고요에 잠들고 있다.

8시간이 넘는 산행으로 모두가 피로에 지쳤다.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달맞이 산꾼들이 속속산정으로 몰려든다. 꿀맛 같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앞마당에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담소 시간을 가졌다.

동쪽 하늘은 구름이 가렸다 지나가고 해서 혹시나 하는 조바심이 앞선다.총총 박힌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웃음꽃으로 꿈 많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본다.

지리한 기다림 끝에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1,400m의 고산지대의 찬 기운이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어둠이 사라지고 별은 빛나고 있다.

찬 기류를 비집고 닭이 알을 낳듯 마침내 구름이 걷히며 동쪽끝에서 첩첩이 싸인 산릉 숲위로 만월이 산마루에 살풋 걸쳐 않는다. 맑고 맑으면서 서늘한 신비의 저 달빛은 고요에 잠든 삼라만상을 뒤흔들어 흉중의 육단으로 자리를 옮긴 벽소령,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현란한 빛이 아니던가!

환호를 재우는 침묵이 흐르고 가슴에는 달빛이 흐른다.새벽에 일어나 마당으로 다시 나왔다.창밖으로 비친 달빛이 서쪽으로 기우는데 벽소령은 대낮이고 새벽은 계속 침묵이다.

10월 22일 일찍 일어났다. 몸이 한결 가볍다. 아침밥을 지어먹고 유수마저 감돈다 하여 이름붙인 지리 10경의 하나인 벽소한월(碧宵寒月)고개를 등지고 무거운 배낭을 다시 졸라메고 차가운 산바람 공기 속에 다시 하루의 긴 여정을 향해 덕평봉(1,521m)을 향한다.(아침6시)지금까지 온 곳과는 달리 가파르고 오르락 내리락 숨가쁜 숲길이 이어진다.운무에 싸인 그림 같은 산맥과 능선,붉게 물든 단풍이 피로를 잠재우는 구원의 손길이라 하겠다.노고단에서 오는 동안 임걸령,뱀사골,총각샘,연하천 산장,벽소령 등 샘물이 능선 곳곳에 있어 종주산행에 새삼 물 걱정은 없다.

맑은 아침 가을 햇살을 받으며 쏜살같이 달렸다.연방 땀방울이 얼굴을 가리며 갈증이 온다.관목지대로 넓은 너덜겅이 있는 곳에 자리한 선비샘에서 갈증을 풀었다. (아침 7시) 옛날 선비들이 이 샘물을 마시며 이곳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해서 선비샘으로 이름 붙여졌고 양반과 천인과의 애환이 얽힌 전설이 있는 샘이기도 하다.선비샘은 능선종주 중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종주길에 들러 갈증을 해결할 수 있어 요긴한 샘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숨을 돌려 재충전된 기력으로 덕평봉 산허리를 휘돌아서 칠선봉(七仙峰)을 향했다. 도장골과 한신골의 원시림지대의 풍광을 조망하며 즐기다, 어느 새 3km를 달려 완만한 능선 위에 자리한 7개의 암봉이 선경을 이룬 칠선봉에 온 것이다.(8/20)

칠선봉은 일곱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니는 형상과 같다하여 이름 붙였다 한다. 봉에 안개가 지나가면 흰 비단옷을 입은 선녀들이 춤을 추듯 고요한 운치는 길손들의 마음을 동요케 한다.

이곳에서 3km를 더 가 영신대 이정표(1,651.9m)를 만났다. 지리산 최고의 비경이며 대성계곡의 발원지가 영신대이다. 세석고원과는 지척이며 여기서 발원된 물이 대성골로 흘러 화개동천에 합수되어 섬진강에 합류한다.이 선경 속에 묻힌 영신대가 무속신앙의 잡다한 제물에 의해 오염되고 환경이 크게 훼손되었다.

영신대 이정표에서 바라본 세석고원은 지리산의 웅장함을 더욱 실감케 한다.진달래,철쭉,구상나무가 펼쳐진 평원을 따라 확 트인 시야를 조망하며 세석산장에 도착했다.(10/40)


지리산 촛대보에서 바라본 천왕봉 / 출처-지리산 국립공원

광활한 세석평전(細石平田)은 둘레가 12km나 되는 대고원으로 잔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5월 초에서 6월 말에 이르기까지 분홍색과 빨강색의 철쭉 수십만 주가 피어나, 그 화려함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100만여 평의 광활한 고원에서 매년 6월 첫째 토요일에 철쭉을 보호하는 캠페인을 하고 번영을 기리는 철쭉제가 거행된다. 세석고원은 상, 중, 하로 나누어 등고선 별로 6백여 종의 식물 분포도가 각각 다르다. 윗쪽은 지보풀, 산새풀, 좁쌀풀 등 초생(初生)식물로, 중앙에는 철쭉의 군락지로,밑은 구상나무,굴참나무,상록수 등 활엽수와 단풍이 승경을 이룬다.신라 때는 화랑들의 수련장으로도 이용되었던 곳이다. 산장에서 쌍계사 쪽으로 2km가면 유명한 음양수 샘터가 길목에 자리한다.음양수에 얽힌 슬픈 전설이 있다.

음양수
아득한 옛날 지리산에 제일 먼저 입산한‘호야’와‘영진’은 대성계곡에서 금슬좋은 부부로 살고 있었는데 자녀를 갖지 못했다.어느 날 남편이 산열매를 따러간 사이,검은 곰이 나타나‘영진’여인에게 세석고원 음양수를 마시면 아들,딸을 낳을 수 있다는 말에 곧장 달려가 샘물을 실컷 마셨다.

평소 곰과 사이가 좋지 않던 호랑이가 지리산 산신령에게 이 사실을 일러 바쳤다. 크게 노한 산신령은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속에 가두고 호랑이의 공을 치하해 백수의왕이 되게 했다.

음양수 물을 마신‘영진’여인에게는 평생토록 잔돌평전에서 외로이 철쭉을 키우게 하였다.슬픔으로 흘러 내린 눈물과 닳아터진 다섯 손가락에서 흘러 내리는 피를 꽃밭에 뿌리며 애처롭게 꽃밭을 가꾸면서 지냈다.

밤이면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죄를빌다가 그대로 돌이 되었으니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바로 가련한 ‘영진’여인의 굳어진 모습이다.

이러한 음양수의 슬픈 전설에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은 옷깃을 여미며 지나가게 된다.새로 단장한 세석산장에서 1시간 넘게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장터목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12시) 평원에서 촛대봉 오르는 등산로 양변에 핀 들국화는 애틋한 모습으로 가을을 수놓고 있다.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는 오름길이 너무나 지루하게 이어진다. 촛대봉(1,662m) 사자바위에서 본 조망은 참으로 훌륭했다.(12/40)


지리산 연하봉 / 출처-지리산 국립공원

전설의 촛대봉을 뒤로 하고 서둘러 한참가다 마주친 삼신봉을 돌아 연하봉으로 향했다.숲 터널로 붉게 된 산홍(山紅)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그 화려함에 취한다.군데군데 파인 등산로는 차라리 석로(石路)라 할 정도로 흙이 거의 없다. 100리 종주길이 바람과 빗물에 씻기어서라 하겠다.촛대봉을 떠난 지 1시간 20여 분만에 수없이 오르고 내리고 하던 고개길과 능선길을 돌아 연하봉(1,667m)에 오른 것이다.(2시)

산정에는 자연고사목(自然枯死木)이 즐비하여 마치 죽음의 숲처럼 황량하기도 하고,반면 아래로는 수백 년을 자라온 원시림이 울창하여 비경을 이루고 있다.주변에는 기화요초가 계절따라 축제를 벌이고 햇빛이 쨍쨍 쪼이다가 운무가 이 봉우리에 잠깐 머물면 옛 노선(老仙)도사가 죽장(竹杖)을 짚고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고산지에서 볼 수 있는 진경이라 하겠다.

층암 절벽이 솟고 기암괴석 사이로 청송과 고사목이 어울려 선경을 빚어 이곳을 10경 중 하나인 연하선경(烟霞仙境)이라 부른다.연하봉을 넘어 긴 능선길따라 장터목에 도착했다.(2/30)산행시간(휴식시간 포함 성상재에서 장터목까지 16시간 35분)

온 몸은 땀으로 얼룩졌고 기진맥진할 정도의 피로가 몰려온다. 다리는 천근같이 무거워 움직일 수 없다. 새로 단장된 장터목 산장은 객들로 붐빈다.지리종주와 천왕봉 일출을 보기위한 길손들인 것이다. 예로부터 시천주민들과 마천주민들이 봄 가을에 물물교환하던 장터로 성황을 이루었던 장터목은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교통의 발달로 시장의 기능을 잃으며 산악인을 위한 산장이 들어서고, 산장앞에는 사철 물이 솟아나는 산희(山姬)샘이 있어 등산객에게는 보배로운 샘터라 하겠다.

장터목에서 바라보는 운해는 노고단의 운해보다도 더 화려하고 감동이 넘치는데 10경에서 빠진 것이 아쉽기만 하다.

오늘 석식 메뉴도 역시 잡탕 참치찌개로 소주 한 잔을 곁들여 하루의 여정을 풀며 긴 휴식으로 들었다.산장은 깨끗하지만 한사람이 누우면 폭이 좁은데다 산행으로 인한 다리의 통증이 잠을 청하기에 고통스럽다.방마다 등산객의 투숙으로 초만원을 이룬다.내일의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0월 23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3/30)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산허리를 맴도는 가운데 배낭을 챙겼다.어둠이 앞을 가로막아 손전등을 켜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4/13) 동호인 한 분은 과로로 산행을 포기했다.

돌무더기 사이로 오르내리는 길이 힘을 빠지게 한다.일출을 보기위한 인파가 등산로를 가득메워 인산인해를 이룬다. 확 트인 해발1,896m의 제석봉을 둘러싼 고사목의 풍광이 장관이다.

구상나무가 원시림을 이룬 제석봉은 6·25 공비 토벌 때 불타고 인간의 도벌로 울창했던 수림은 황량한 고원에 불탄 고사목 군만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남쪽에는 옛날 산신의 제당인 제석당이 있다. 1,700m고지에 자리한 제석당은 제석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사철 솟아 명당자리임을 알 수 있다.

지리산에는 천수(天壽)를 다한 수천 그루의 고사목들이 도처에 서있기도 하고 쓰러져 있기도 하여 특이한 경관을 이룬다.이 나목(裸木)현상에는 반야를 기다리다 지친 마고성모(麻姑聖母)가 손톱으로 긁어대서 생긴 것이라는 설화가 깃들어 있다.


지리산 삼도봉에서 바라본 일출 / 출처-지리산 국립공원

제석봉의 일출을 보고 천왕봉의 일출보다 더 감동적이란 말은, 지리 10경을 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고사목 지대를 지나 바위봉 몇 개를 넘어 통천문(1,890m)을 만났다. 왼쪽으로 길게 뻗은 계곡이 지리산 최대의 칠선계곡이며 오른쪽은 협곡을 이루고 있는 죽음의 계곡으로 중산리 계곡과 이어진다. 통천문을 지나 지리산 왕봉(王蜂)답게 우뚝 솟아 위용이 당당한 천왕봉(天王峰 1,915m)산정에 올랐다.(5/40) 최고봉인 천왕봉을 위시하여 크고 작은 90여 개의 봉으로 이루어진 산악군을 거느리고 있으며 남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는 남해바다의 다도해가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정상 표시석을 중심으로 주위는 각지에서 해돋이를 보기위해 몰려든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바람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는 우리들의 소망을 들어줄 것 같다.

이윽고 사방이 막힘없이 탁트여 끝없이 펼쳐진 회색 구름바다 저 멀리서 서서히 홍일점의 서기(瑞氣)가 어리다가 오색 광채의 거대한 태양이 천지개벽의 순간을 알리는 듯 진홍빛 햇살을 내뿜으며 구름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 광경을 보는 순간, 한목소리의 감탄과 환호성이 천왕봉을 메아리친다.(6/10,일출시간)

이 거대한 파노라마는 1년 중 다섯 번 정도 밖에 없는 일출 광경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광경이라고 했다.예부터 3대가 공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일출은 가히 황홀경이라 하겠다.더구나 일출의 산그늘이 반야봉을 스치는 일은 거의 볼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순간도 오늘 맛보았으니 나는 행운의 사나이라고 감히 말해 본다.

산행에서 얻은 피로가 한순간의 연출로 사라진다. 신비경의 순간들은 카메라에,추억은 가슴에 담고 마지막날 긴 여정의 등정길을 다시 시작했다.(6/30)

북쪽아래 형제처럼 나란히 줄지어 선 중봉과 하봉이 용트림하듯 웅장하게 뻗은 능선으로 발길을 재촉했다.운해에 가린 산하,허리를 감돌아 흐르는 변화무상한 자연의 조화는 신비로움이다.칼날 능선 곳곳에 앙상하게 서있는 아름드리 고사목들과 주변의 암봉들이 조화를 이룬다.울긋불긋한 산홍의 단풍숲을 헤쳐가면 가을향기가 그윽하게 풍긴다. 빼어난 비경, 절정의 만추에 바로 심취되고 말았다. 1,875m의 중봉에 올라섰다.(7/10) 주변이 온통 철쭉나무로 뒤덮혀 있고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황금능선이 아래자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에 길게 뻗은 능선이 하봉이고 동쪽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듯한 것이 써리봉이다.능선을 따라 눈을 돌리면 멀리 보이는 치밭목산장의 지붕이 퍽 인상적이다.

하봉 가는 길을 버리고 절승의 전시장인 써리봉(1,602m)을 향했다. 치밭목산장까지는 약 3km거리인데 암봉의 경관이 어느 곳보다 특이한 곳이며 옹기종기 붙은 기기묘묘한 뾰족한 멋진 바위가 하늘을뚫을 듯 치솟아 감탄 연탄이 절로 나는 써리봉 가는 길목은 아침햇살이 밝아 유난히도 붉게 물든 단풍이 현란한 빛을 발해 피로를 순식간에 잠재운다.오솔길 구비구비마다 달라지는 형형색색의 풍광을 만끽하게 되고 곧게 뻗은 구상나무는 한층 더 기상을 높힌다.

오르락 내리락하며 다시 골짜기로 깊숙히 빠져 철다리를 건너 힘겹게 올라간 써리봉은 유별나게 깎아놓은 조각처럼 기묘한 바위가 봉 주위를 둘러친 구상나무와 아름다움을 엮어 압권인 조망과 함께 황홀을 연출한다.

검게탄 얼굴에 태양과 단풍이 그림으로 수놓아 인홍으로 변한 내 모습은 자연에 포로되어 속세를 하늘에 날리고 가을 풍치에 시간마저 잃고 원시림속을 헤치며 달려온 곳이 치밭목산장(1,450m)이다.(9/10, 천왕봉-치밭목 4km) 여러 종류의 취나물이 널려 있다해서 이름 붙여진 산장은 아담하고 분위기가 좋고 간이매점과 넓은 휴식공간,숲으로 어울린 경관이 더없이 아름답다.산장 위쪽 넓은 공간의 느티나무 아래서 검게탄 얼굴에 뒤범벅으로 얼룩진 땀을 씻고 2시간 가까이 긴 휴식으로 간밤에 잠 못 이룬 장터목산장에서 얻은 피로를 이곳에 남긴다.

동호인들이 준비해 온 갖가지 재료에다 각별한 요리솜씨로 맛을 낸 조식과 오찬을 겸해 소주 한잔 곁들이는 식사는 산중의 별미로 입맛을 배가시키는 특미라 하겠다.

긴 휴식을 끝내고 대원사로 하산길을 잡았다.(11시) 따가운 가을 날씨가 이내 땀을 솟아나게 한다.하산길 첫 명소인 무재치기(치마바위) 폭포 전망대에 올랐다. (11/30) 높이 20m와 폭이 넓은 3단의 거대한 수직절벽에서 세 줄기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휘날린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단풍과 고사목이 어울려 속삭이는 절승의 연속이다.날짐승들이 한가로이 폭포 위로 맴도는 모습은 자연이 빚어낸 또 하나의 걸작이다.장단골 상류에 위치한 폭포는 6·25때 빨

치산의 소굴이었으나,옛 전란의 상처를 잊은 듯 물보라는 더욱 빛난다. 림지대처럼 우거진 숲속을 끝없이 내려가다 고개를 하나 더 넘어 한판골로 빠졌다. (1/50) 한판골에서 발원한 물이 대원계곡으로 흘러간다. 요란한 물소리, 거칠것 없는 힘찬 행진곡, 지리의 생명력이 용솟음친다.한판골의 길게 뻗은 능선은 지루하리만큼 이어지며 비탈과 능선길,너덜겅으로 이루어진 산로는 때로 약초캐는 사람들도 길을 잃는다고 할 정도로 여러 줄기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게 뻗어내린 계곡을 따라 한판골을 지나면 밤밭골로 이어지고 이 곳을 빠져 유평리에 도착했다.(2/35)

유평리 대원사 계곡은 한때 수마로 아까운 젊은이들의 많은 목숨을 잃게 한 상처를 안은 계곡이다.그날을 잊은 듯,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돌고도는 계곡은 이곳저곳에서 소와 담을 이루고,벼랑을 지고 뻗은 아름드리 잡목의 숲은 곳곳에서 소나무들과 어울려 숲터널을 이루고 있다.긴 여정도 대원사에 들러 법당에 삼배드리는 것을 끝으로 2박 3일의 지리 100리 길 종주를 마감하게 된다.(천왕봉- 대원사 14km8시간 소요)

대원사(大源寺)
해인사의 말사로서 신라 진흥왕 때,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다.초창 때에는 평원사(平原寺)라 불리었고, 이후 숙종 때 증암 운권선사가 대원암이라 개칭하였으며 그후 고종 때 구봉헤흔 선사가 지금의 대원사라 개칭하였다. 창건이래 세번의 화재와 재건이 거듭되었는데 여순 반란사건 때 또 한 번의 화재로 소실되었다.현재의 대원사는 1959년 김법일(金法一)스님에 의해 재건되었다.신라 자장율사가 세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구층 석탑과 대웅전 사리전 등을 갖추었고 현재는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수많은 산 속의 산을 안고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겨레의 진산이다.

한국 제1의 자연의 산으로 인간과 함께 공존하며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훼손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오물로 인하여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절승에는 무속인들이 산천을 오염시키고 있다.

등산로는 비바람에 씻기어 돌만이 남아 산사태를 이룬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물론 철저한 관리를 해야겠지만 우리모두가 깊이 반성하고 깨달아 옛 선조들이 물려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겠다. 이것이 당대의 우리가 함께 숨 쉬며 할 일이요, 후세에 넘겨줄 금수강산을 우리 손으로 보존해야 하는 의무라 하겠다.

교통편 : 구례 버스터미널-성상재(6회), 진주터미날-대원사(1시간 간격으로 있음)

뉴스제보 jebo@newsro.kr

<©국가정보기간뉴스–뉴스로,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알림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