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식의 다시 본 명산] 가야산(伽倻山) | 뉴스로

[김창식의 다시 본 명산] 가야산(伽倻山)

조선 8경의 하나인 해동 영지로 칭송되어온 명산 가야산을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경상도에는 석화성(石火星)이 없다. 오직 가야산만이 뾰족한 바위들이 늘어서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 대단히 높고 수려하다”고 표현했다.

석화성이 있어 신의 가호를 받는 영산이라고 알려진 서울의 북한산, 충남 보은의 속리산과 함께 산과 돌의 끝이 뾰족뾰족하게 모여서 처음 피는 연꽃 같기도 하고 횃불을 벌려 놓은 것 같기도 하다.

1972년 아홉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백두대간 중 소백산맥 대덕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지맥으로 지덕이 높다.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거창 두리봉(1,133m) 남산제일봉(일병 매화산 1,010m) 의상봉, 비계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은 칠불봉, 서성재 백운산성 줄기로 하여 백련암 구원을 감싸고, 밖으로 가령을 거쳐 가산(690m)으로 이어져 석봉으로 둘러쳐져 있다.

경북 성주 쪽 백운동에서 보는 가야산은 만물상(萬物相)의 개골산이 된다. 특히 임진왜란 때 가야산은 오대산, 소백산과 더불어 왜적이 발을 붙이지 못했다 하여 예부터 전란이 침범하지 못하는 산으로 꼽고 있다. 팔만대장경판과 고려 고종이 1227년 명종실록을 이 곳 해인사에 보관한 까닭도 여기에 연유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스님아 청산 좋다 이르지 말게.
산이 좋다면 왜 다시 나옵니까.
먼 훗날 내 종적 눈여겨보시오.
청산에 들면 다시 안 나오리라.

신라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38세의 나이로 가야산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위해 입산하며 남겼다는 말이다.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 이정 스님의 전기를 써서 남긴 것으로 보아 불교에 깊이 빠져든 것 같다. 가야산은 백련암(白蓮庵)에서 수도했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성철 스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유명해졌다.「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법어는 홍류동 계곡의 맑은 물과 더불어 가야산을 찾는 사람에게 신성한 바람을 일으키는 말이다.

홍류동(紅流洞)계곡은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계곡물이 붉게 물든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봄·가을에 으뜸가는 풍경을 이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가을철 단풍은 소나무와 함께 그 빛이 더욱 영롱하고 맑은 물이 10리를 흘러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특히 무릉교, 홍필암, 음풍수, 취적화, 완재암, 광풍수, 제월담, 낙화담, 첨석대, 홍류동 등 12곡(谷)이 선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최치원 선생의 말과 성철 스님이 남긴 법어의 근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설명: 가야산 / 합천군청 홈페이지 캡쳐)

가야산(伽倻山 1,430m)은 동서로 줄기를 뻗고 있으며, 남북으로는 경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합천 쪽의 산자락은 부드러운 육산을 이루고 성주군 쪽은 험하고 가파르다. 가야산의 원래 이름은 ‘소머리산(牛頭山)’이었다고 한다. 가야는 범어로 ‘소’를 가리키는 말이고 인도의 가야산은 석가모니가 『가야산 정경』을 설법한 유적지다. 해인사 같은 큰 가람을 품은 산의 이름을 인도의 가야산에서 따 온 것을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불교 학자들은 해인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름으로 해석하고 있고, 가야산 정상부에 우비정이라는 샘이 있어 우두산이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옛 가야국의 이름을 따른다. 1세기경 우리나라 남쪽에 위치한 낙동강을 젖줄로 하여 세워진 대가야국이 합천, 고령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야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가야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해인사는 우리나라 3보(三寶)사찰(불보 양산 통도사, 승보 승주 송광사, 법보 합천 해인사) 중의 하나로 신라 애장왕 3년(서기 803) 순응·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국보 제32호 고려팔만대장경판 8만 1천 58기를 국보 52호 되는 □자꼴로 지어진 판전에 봉안하고 있다.
불교 조계종의 유일한 종합수도장으로서 그 가람과 간직하고 있는 많은 문화재 가운데 경판고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국보이다.

해인사(海印寺)란 절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해인삼매에서 연유된것이며, 사명대사의 우국정신과 애족지심을 간직한 홍제암 등 14곳의 부속 암자들이 들어 차 해인총림(海印叢林)을 이룬다.

·해인삼매(海印三昧): 우주의 모든 것을 깨달아 부처님의 지혜와 법을 관조(觀照)함이, 마치 바다가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비치고 있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해인사의 방대하게 늘어선 당우(堂宇)는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응진전, 조사전, 응향전, 퇴설당, 구광전, 삼성각, 경학원, 명월당, 사운당, 국사단,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등 50여 동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다. 부속암자인 백련암은 해인사의 부속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아 기이한 바위와 탁 트인 전망은 가야산의 제일 승지로 손꼽히는 자리인데 예부터 많은 고승들이 찾아 수도했다고 한다.

가야산 등산길은 해인사가 위치한 치인리 쪽에 3개의 등산로가 나있고 성주군 수륜면 쪽에 2개의 등산코스가 있다. 백운동에서 정상에 올라갔다가 해인사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완주하는 코스로 알맞고,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험하지만 절경을 바라보며 멋있는 바위봉들을 접하기에는 좋은 길이다.

오늘 답사코스는 12시 15분, 백운동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곧장 산행로로 접어들었다.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하여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용기골을 끼고 10여 분 올라가니 물소리가 들리고, 맑은 물이 백운동계곡을 바위틈바구니로 감아 돌면서 흘러내려간다. 백운동 1교와 2교, 3교를 거치는 동안 줄곧 산죽들이 등산로 곁에 자리 잡아 절개를 자랑하는 푸르른 빛깔로 오고 가는 산꾼들에게 신선함을 던져준다.

주위에는 잡목들이 울창하게 자리 잡고 있으나 붉은 단풍잎은 낙엽으로 변모하여 산비탈에 뒹굴고 있다. 겨울 채비에 들어가는 용기골이 얼마 가지 않아 흰 옷으로 단장하면 새로운 모습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무척 궁금하다. 험한 돌길이라 걷기에도 불편하고 체력소모도 크지만, 위를 쳐다보면 석화성을 실감할 수 있어 감탄 속으로 피로가 사라진다. 방향이 바뀔 때마다 뾰족한 바위들이 열병을 취한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가야산의 비경임이 틀림없다.

30여 분 만의 산행으로 백운동 대피소에 도착해서(12/45) 숨을 돌렸다. 대피소 주위의 경관은 아름답고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정감을 더해준다.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고 12시 55분, 이곳을 떠났다. 오를수록 힘이 들고 바위봉들은 크고 작은 모습으로 시야에 가까이 들어와 웅장함을 자랑한다. 백운사지를 지나 1시 35분 해발 1,000m인 서성재안부에 도착했다. (산행시간 1시간 20분)

바위봉으로 둘러싸인 가야산의 면모가 하나 둘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서성재 고갯마루는 쉼터로 잘 가꾸어져 있고, 중봉, 칠불봉, 동봉 등이 우뚝 솟아 위용을 떨치고 있는 모습을 지척에 두고 있다. 서성재에서 왼쪽은 가야공룡능선으로 가는 길인데 폐쇄되어 있다.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오르다 힘든 너덜지대를 만났다. 오른쪽이 바로가야산성이다.

이곳을 지나 첫 무명 바위봉을 만나 위험부담이 따르지만 네 발로 간신히 기어올라 바위 꼭대기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니, 동서남북으로 둘러친 산맥이 실구름으로 가리면서 넘실대는 모습에 가슴이 설렌다. 다시 내려와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철계단을 오르내려 중봉에서 조망을 즐기고, 칠불봉에 도착했다.

7봉우리가 옹기종기 붙어 거대한 바위군으로 이루어져 대단한 위용을 갖춘 바위이다. 칠불봉을 지나 1,433m인 동봉에 오르니 오르기도 힘들지만 낭떠러지가 천길이나 되는 듯하여 내려다보기가 아찔아찔하다. 고스락 상왕봉(일명 우두봉)을 지척에 두고 고개마루 쉼터에서 1시간의 휴식을 보냈다. (오후 3시)

휴식을 끝낸 후 오후 4시, 거대한 바위군으로 이루어진 고스락 상왕봉(1,430m)에 올랐다. 서쪽으로 두리봉(1,133m)과 단지봉, 멀리수도산(1,316m)이 달린다.

산 남쪽 지맥에는 홍류동계곡을 건너 남산(매화산) 제일봉이 톱날처럼 삐죽삐죽 치솟았고, 우람한 산괴(山塊)를 겹겹이 싸감았다. 북에서 동을 거쳐 남으로는 하얀 운해가 멋이 있다. 기백, 금원, 황석 등 남덕유, 북덕유와 멀리 천왕봉과 반야봉이 운해 사이로 보인다. 멀리 구름 위에 희미하게 떠 있는 지리산이 첩첩이 운해의 움직임에 따라물결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벼랑 아래는 수해(樹海)와 기암괴봉이 구름과 함께 숨바꼭질하며 찬란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고스락 밑에 있는 소머리 우비정은 영산의 혼을 간직한 채 찬란하고 유구한 역사의 가야산(우두산)을 지켜주고 있는 곳이다.

고스락을 뒤로 하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걸으며 해인사를 향해 하산하기 시작했다. 급경사로 된 등산로를 30여 분 가면 암봉을 지나게 되고, 마루턱에서 뻗어 내린 등성이를 타고 가면 대피소를 만난다. 대피소를 지나면 등산로도 좋은 편이고 주위를 감싸는 수목과 토신골과 극락골에서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곳부터는 가야산이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뒤돌아보면 뾰족한 고스락이 우람하게 버티고 서서 최치원의 펄럭이던 도포자락을 감싸주었고, 가야산의 웅기를 받은 성철 큰스님의 법어는 자꾸 내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토신골을 계속 내려가면 산죽을 만나게 되고, 연이어 참나무와 노송, 그리고 잣나무가 하늘을 덮고, 이어진 산골짜기와 비탈길에 쌓여진 황금빛 낙엽길이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하다. 시간도 5시가 넘으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서 마애불상은 돌아보지 못하고 학사대를 거쳐 용탑선원에 도착하니 해인사도 고요 속에 파묻혀 있다. (5/20)

십리길 송림숲과, 계곡 반석 사이로 수십 리를 흐르는 옥수와 함께홍류칠곡에 머물어 성성선운(星星仙韻)이 서린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를 소개하며 산행을 마감한다.

미친 듯 쏟아지는 우람찬 저 물소리
지척간 말소리도 분간키 어렵네
시비소리 들려올까 내 항상 두렵더니
흐르는 물로 하여금 산을 온통 귀먹게 했구려


(사진설명: 가야산 / 합천군청 홈페이지 캡쳐)

교통편: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해인사 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성주군 백운동으로 가는 노선버스는 고령에서 이용한다. 운행횟수가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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