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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장의 신소리 쓴소리] 조선시대에도 지방수령(공무원)의 최고의 역할은 ‘지역경제 살리기’였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지방행정)의 역사는 600년! ’
올해는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로 민선 7기 지방정부의 새롭게 출범한 민선 24년째가 되는 해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을 국정목표 및 핵심과제로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균형발전을 추진하고 있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성장을 위한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때이다.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현대적 의미의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시작은 이미 1948년에 제헌된 제헌헌법에 명문화되어 있으며 1952년에 최초의 지방의원선거가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7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왕에 시계 바늘을 아주 오래 전으로 돌려보면, 현재의 지방행정구역(시·도, 시·군·구)는 조선 초기인 1413년 태종이 지방수령에 대한 감찰을 위한 상설기구인 관찰사를 전국 8도에 파견하고 도(道) 밑에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둠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고려 초기 성종(6대) 때 이미 중앙에서 지방으로 직접 관리를 임명하여 파견하는 지방통치체제가 정비되었으나, 이는 중앙집권국가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에서의 지방행정제도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사진설명: 원주 강원감영은 강원도 관찰사가 1395년부터 1895년까지 약 500년 동안 강원도 전체를 다스렸던 곳이다. 출처=강원도청 홈페이지)

‘현재의 시·군·구는 조선시대의 목(牧)·군(郡)·현(縣)’
600년 전 조선 태종 때의 지방행정제도를 살펴보면, 도(道)에는 관찰사(현 도지사)를 1명씩 두었으며, 관할 도의 행정·군사 및 사법권을 행사하며 그 산하 수령을 지휘·감독하였다.

부(府)에는 부윤(현 특별시장·광역시장)을 두었으며, 조선이 개국하면서 수도인 한성을 비롯하여 1403년 전주, 1406년 함흥, 1577년 경기도 광주, 1592년 의주 등 모두 6군데에 두었다.

목(牧)에는 고려 초기 전국 12목에 목사(현 시장)을 파견함으로써 목이 비로소 지방 행정구획의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조선시대에 20목이 설치되어 목사가 임명 파견되었다.

군(郡, 전국 82군)에는 군수(현 군수)를 임명 파견하였으며, 현(縣)은 지방행정구역 중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현감(현 읍장·면장 또는 구청장)을 임명 파견하였다.

부윤(府尹:從二品)‧목사(牧使:正三品)‧군수(郡守:從四品)‧현령(縣令:從五品)‧현감(縣監:從六品) 등은 그 품계에 고하(高下)는 있었으나, 행정상으로는 상하의 차별 없이 모두 관찰사의 지휘감독을 직접 받았으며 이들을 통칭 수령(守令)이라고 하였으며, 백성들은 이들 수령들을 공대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인 ‘사또’ 또는 ‘원님’으로 주로 호칭했다.

‘조선시대에도 지방행정의 최고 이슈는 ‘지역경제살리기’ 였다.‘
조선시대의 지방관(수령)은 행정·사법·군사 등 권한이 매우 강력했으나 임기가 제한되어 있었고, 또한 자기의 출신지역에는 임명될 수 없다는 상피제가 철저하게 적용되었다. 이는 3권 분립(지방정부, 지방의회, 사법)과 선거에 의한 연임가능, 출신지역(특정 기간동안 연고유지)을 기반으로 선거가 이뤄지는 현재의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상피제나 연임불가 등의 제도는 지방관의 부정부페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는 점에서, 600년이 지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엔 왕의 명을 받은 지방관이긴 하나, 전국 330여개의 고을(지역)에 수령을 파견해 왕의 대리자이자 해당 지역의 왕으로 위민의 정신으로 백성을 살피도록 하였다. 특히 백성을 ‘관리’토록 한 것이 아니라 ‘살피’도록 했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수령이 해야할 일에 대한 지침(규정, 법규)에 해당하는 ‘수령 7사(守令 七事)’에 보다 명확히 드러나 있다.

‘수령 7사’는 고려 후기 1375년 우왕 때 원나라의 제도를 따라 제정한 수령5사를 조선 태종 때 수령 7사로 개정한 것이다.

우선 첫 번째는 농상성(農桑盛)이다. 농업과 양잠에 힘쓰라는 것인데, 요즘 상황으로 바꾸어 보면 주민들이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경제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각 지자체가 지역발전을 위해 경제살리기와 재원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지자체와 역할과 책임의 제1은‘경제살리기’임은 불변의 법칙이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호구증(戶口增)이다. 말 그대로 호구 수를 증가시키는 업무로서 현재의 지자체 인구증가책과 유사하다. 역시나 저 출산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소멸 위기감은 현재에 와서 이슈화된 것이 아닌 이미 600년 전에도 지역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다.

세 번째는 학교를 만들고 관리하는 학교흥(學校興)으로, 지방교육기관인 향교를 만들고 관리유지하는 일이었고, 네 번째는 지역 치안을 잘 살펴야 한다는 의미인 군정수(軍政修)로서 현재는 경찰서장의 역할에 해당한다.

다섯 번째는 부역균(賦役均)이다. 부역의 부과를 균등하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현재의 세무소 역할에 해당하며, 여섯 번째는 재화의 소유권이나 신분 간 문제에 얽힌 백성들의 분쟁을 잘 정리해야 한다는 사송간(詞訟簡)으로 현재의 법원의 역할에 해당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간활식(奸猾息)이다. 행정실무를 장악한 향리(鄕吏)와 품관(品官)을 관리하고 제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위감사 또는 옴부즈먼 제도가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조선 시대 지방관은 비록 중앙에서 왕이 직접 임명 파견했지만 민선 지방자치시대에 지역 주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 선발하는 요즘의 단체장보다 훨씬 더 중요했고 더 많은 일을 했다. 즉 조선시대 지방수령들은 그 지역에서 행정, 사법, 교육, 치안, 군사 문제까지 모두 다루었으며 지금의 군수, 검사, 판사, 경찰서장, 교육감, 세무서장, 향토사단 사단장 역할을 지방수령이 모두 했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지방관은 막중한 책임과 강력한 권한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령7사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중 제1의 책무는 역시나 현재와 같이‘지역경제 살리기’였다는 점에서, 지방재정확충과 경제살리기를 위해 각종 공모사업을 발굴하고 정책·사업을 개발하여 경제살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재의 지자체와 지방공무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신판용 KPAC 소장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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