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식의 다시본 명산] 기암기봉이 병풍을 치고 1, 2, 3 폭포가 절경을 잉태한다, 주왕산 | 뉴스로

[김창식의 다시본 명산] 기암기봉이 병풍을 치고 1, 2, 3 폭포가 절경을 잉태한다, 주왕산

제일의 명산인 주왕산(720.6m)은 청송군 부동면에 위치하며 태백산맥의 지맥에 솟아 있는 산으로 1976년 국립공원으로 12번째 지정되었다.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屛風)을 친 것 같다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리다가 진나라 후송인 주도가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자칭 후 주천왕이라 칭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 부하들과 함께 이곳으로 숨어살다가 신라 장수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그 후 이곳에서 수도한 나홍대사가 주왕산으로 개명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전설의 주왕은 바로 신라시대 김주원(김헌창)이가 실제 인물로, 반란자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당나라 이야기로 꾸며 놓았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주왕과 관련된 지명들이 많이 있다.

예부터 주왕산 자락에는 많은 사찰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사지의 흔적만 남아있고 고찰인 대전사를 비롯한 4개의 사찰만 현존하고 기암(旗岩) 등 24곳의 절경이 있다. 불붙듯 산을 물들인 수달래(진달래), 초록의 싱그럽고 시원한 계곡, 자연이 일구어낸 울긋불긋한 당풍의 장관, 기기묘묘한 기암과 병풍으로 둘러친 바위 등 변화무쌍한 주왕산의 경관이야말로 절승지로서 소금강이라 불러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주왕산 가을 주산지 / 국립공원 홈페이지 캡처

3대 계곡 중 하나인 절골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 원시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인근의 주산지는 한폭의 수채화를 수놓은 듯 수백 년 된 왕버들이 물속에서 자라고 있다.

1, 2, 3 폭포와 달기폭포는 아름답고 장엄한 경관으로 펼쳐져 보는이로 하여금 탄성을 연발케 한다.

세계적 희귀수목인 망개나무를 비롯하여 둥근잎꿩의 비름, 솔나리, 노랑무늬 붓꽃 등 식물자원 888종과 수달, 너구리 등 동물자원 902종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가 주왕산이라 하겠다.

오늘 답사길은 한적하고 호젓한 원시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절골(해발 225m)에서 시작된다.

주왕산 기암 / 국립공원 홈페이지 캡처

가을이 익어가는 절골(11/40) 매표소를 지나 널찍한 등산로를 따라 협곡으로 들어가니 기암절벽들이 앞다투어 선보인다. 누구나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이 펼쳐진다. 절벽 밑으로 만들어놓은 긴나무다리를 지나자 이내 암반지대가 나타난다. 암반을 깔고 흐르는 옥수는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고 크고작은 계류를 수없이 건너야하는 심산유곡에는 붉은 단풍잎이 자태를 뽐내 눈을 시리게 한다. 때묻지 않는 협곡은 말 그대로 살아숨쉬는 원시림계곡이다.

협곡에 들어선 지도 30여 분, 신술골 입구 갈림길에 다다랐다(12/10). 우측 신술골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으로 이 고장 청송 산악인들이 가끔 이용하는 조용한 협곡이다.

심술골을 버리고 직진절골을 향한다. 계곡을 몇 번 건넌 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계곡이 있어 비가 오는 날에는 절골 산행은 삼가해야 하는 곳이다.

깊은 골사면을 돌아 절벽이 앞을 가로막아 자갈밭을 건넜다. 누군가가 돌을 쌓아 비석처럼 세워진 공을 많이 드린 돌탑을 보게 된다. 자갈밭을 왼쪽으로 가로질러 한참 올라가다 절골에 닿았다.(12/35)


주왕산 주왕계곡 / 국립공원 홈페이지 캡처

넓찍한 사지 주변은 집들이 있었던 흔적이 있고 그 자리에 억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절터는 운수암(雲水庵)이란 암자가 해방 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해방후 빨지산이 자주 출몰한 관계로 강제 철거 되었다고 전하며, 주왕전설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김범문이 840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 후 1960년대에 화전민들이 들어와 조그마한 마을을 일으켜 살다가 정부의 소개정책으로 다시 빈 골짜기가 되었다고 한다.

절골 사지를 지나 10여 분을 골짜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폭이 20m 남짓한 소를 보게 된다. 소의 위에는 두 가닥으로 계곡이 나누어지는 갈림길을 두고 대문다리라 부르고 오른쪽의 골짜기는 갈절골이라 하는데 폐쇠시켜 놓았다. 이곳은 과거 대문처럼 생긴 나무다리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12/50) 대문다리를 지나면 큰 암반지대가 다시 나타난다. 편히 쉬고 싶은 암반이다. 골짜기를 깊숙히 들어가자 계곡은 좁아지고 손짓하는 단풍골 따라 가메봉 가는 지능선길에 닿았다. 다리4개와 계곡 25개를 건너온 물길계곡이 이곳에서 멈춘다.

가메봉 가는 가파른 지능선길을 올라탔다. 숨이차는 오름 길이지만 남향의 따뜻한 햇빛 받으며 단풍잎 사이로 난 오솔길이 다정스럽다.

해발 570m에서 첫번 째 안동권씨 합장묘를 만나고 얼마안 가 또다른 안동권씨묘(해발 630m)를 보게 된다. 명당자리인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니 깊숙한 절골이 아련히 보이고 고요에 묻혀 있다.(1/25)

다시 발품을 팔아 오른 능선 안부에서 산행에서 가장 즐거운 점심 시간을 갖고, 30분의 휴식을 끝내고 가메봉 산정에 올랐다.

절골에서 5.7km거리다.(점심시간 포함 소요시간 3시간)

가메봉이란 지명에 대해서는 바위가 가마처럼 생겼다는 유래에서부터 여러가지 설이 있어서 설명이 복잡해 생략한다.

주왕산의 중심에 위치하여 조망도 좋은 편이여서 실제적인 정상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산정에 잠시 머물다 다시 안부로 내려와 좌측 큰골로 하산길을 접었다

수목이 빽빽이 들어서있는 골짜기로 깊숙히 들어가면 사방을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깊은 골이다. 맑고 붉은 단풍이 오색 빛을 발하여 가을속으로 빠졌다. 한시간 여 만에 큰골을 지나 삼거리 입구에 닿았다.(3/30) 좌측으로 돌아 내원마을을 향했다.(가메봉에서 내원분교까지 3.1km) 내원마을은 40여 가구가 살았던 조용한 마을인데 지금은 10여 가구가 대자연속에 묻혀 살고있고 폐교된 내원분교자리에는 내원산방이란 전통찻집이, 분교관사는 살림집과 식당으로 활용하고 있어 하산길에 많은 산꾼들이 이곳에 들러 술 한잔 나누며 정담을 나누곤 한다. 청송솔뫼산악회 산꾼 이상해 김희숙 부부가 운영하고 있으며 민박이 가능한 곳이다.

잠시 들러 토속주로 목을 축이는데 발디딜 틈 없이 많은 산꾼들이 모여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금은광이 세밭골과 큰골에서 내려오는 물이합수되는 삼거리에서 쏟아붓는 물줄기와 물보라를 이루면서 굉음을 내는 절승인 3폭포에 닿았다.(4시)


주왕산 달기폭포 / 국립공원 홈페이지 캡처

3폭포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1, 2단 사이에 넓은 담이 있고 양쪽 바위벽에는 5개의 얕은 굴이 패어 있어 이 곳을 스친 물이 담을 한바퀴 돌아 다시 2단으로 흘러내려 소를 이룬다. 거대한 주목과 노송으로 둘러싸인 단풍잎이 붉게 옷을 갈아입어 주위의 경관에 묻힌 3폭포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3폭포에서 내려가는 길은 관광코스로 잘 정리되어 넓으며, 기암봉 사이로 계곡을 끼고 있는 주위 경관은 주왕산이 자랑하는 절경들을 한데 모아 놓은 듯하다. 수많은 인파가 이 곳을 보기 위해 몰려들어 국립공원으로서의 면모는 잘 갖추어진 셈이다.

2폭포는 내려가다가 왼쪽 비탈길로 들어서면 나타난다. 2폭포는 1, 2단으로 그 사이에 큰 바위 웅덩이가 있다. 물이 맑고 흐르는 모양이 신비스러워, 달 밝은 밤이면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고 해서 선녀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이 곳을 지나 1폭포로 가는 길목은 천연기념물 207호인 망개나무가 20m나 군락을 형성하여 주변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폭포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제1폭포에 왔다.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시루봉과 학소대 사이에 바위덩어리를 쌓아 그 사이로 하나의 폭포를 만든 곳이다. 길이 22m나 되는 폭포는 물이 바위 사이로 흘러 깊은 골짜기로 굽이치며 쏟아져 내려간다. 기암절벽에서 힘차게 내리쳐진 물방울이 흩날려 신부의 베일처럼 하얗게 퍼진다. 바위벽에 낀 축축한 이끼들은 천 년의 세월 동안 사람의 발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자리잡아 선경(仙境)이라 하겠다.

1폭포는 1, 2단을 한꺼번에 볼 수 없다. 각각이 굽이쳐 돌아앉아있기 때문이다. 폭포 아래에도 바위벽과 개울이 절경으로 이어지고, 관음봉은 저쪽 위에 솟아 있고, 급수대는 개울 쪽으로 기울어져 하늘을 가린다. 1폭포를 지나 바위골의 풍경을 보면서 학소교를 건넜다.

주왕산 용추폭포 / 국립공원 홈페이지 캡처

학소대(鶴巢臺)는 90。절벽인데 옛날 청학(靑鶴), 백학(白鶴)이 이 봉우리에서 떼를 지어 살았다 하여 그렇게 불리어진다. 또 옛날 이 바위 밑에 도승(道僧)이 절을 짓고 살았는데, 꿈에 신선이 나타나 대피하라고 알려준 후 승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위가 굴러 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옛 절터에는 덩쿨과 이끼만이 무성하다.

학소대를 지나 왼쪽 비탈길 옆에 있는 바위 고스락에는 신라 왕손 김주원이 집을 짓고 살았다는 대궐터가 있으며, 바위 위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렸다는 급수대도 지난다. 멀리 건너 보이는 망월대, 신선대, 시루봉, 백련공주를 성불시켰다는 연화굴 등 수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는 명소들을 바라보기만 하고 돌아가는 길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왕이 신라의 마장군에게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는 주왕굴과 주왕암에 도착했다.

주왕암(周王庵)
관음봉, 촛대봉과 향로봉 등의 기암절벽이 둘러싼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주왕이 주왕굴에서 전사하였으므로, 주왕의 구국정신을 기리고 넋을 위로하는 뜻에서 그 이름을 따서 주왕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시대부터 나옹화상, 도선국사, 보조국사, 무학대사, 최치원, 서거정, 김종직, 김정국 등의 저명한 대덕선사와 거유들이 정진, 수도하였던 유명한 도장이다. 특히 나한전은 16나한을 봉안한 법당이다.

주왕굴
주왕이 천혜의 요새지인 주왕산에 와서 은거하다가 신라의 마장군에게 발각되어, 장군이 쏜 화살에 웅지를 이루지 못하고 애절하게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굴인데, 왼쪽으로 있는 바위 사이의 좁은길을 100여 미터쯤 들어가면 비로봉과 촛대봉 암벽 사이에 있다. 입구에는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다. 암벽을 덮은 파란 이끼들은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보다도 많은 풍상을 겪은 탓인지,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로 주왕의 넋을 기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주왕굴을 나와서 주왕암을 지나 대전사로 향했다. 길 왼쪽을 끼고 흐르는 주방천은 너무나 맑아 태고의 신비가 그대로 비칠 것 같고, 주왕산 수달래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주왕산 수달래(일명 진달래)
중국 진나라의 후예 주도가 자칭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다가 패하여 이 곳에 들어와 은거하던 중, 신라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숨을 거둘 때 흘린 피가 주방천을 붉게 물들이며 흘렀다고 한다. 그 이듬해부터 이제까지 보지도 못했던 꽃이 주방천 물가에서 피었다고 하여 그 후 사람들을 그 꽃이 주왕이 흘린 피로 말미암아 피어난 넋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매년 5월에 수달래제를 지내고 있다.

주왕산은 전체가 주왕의 전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이 곳에서 당시 주왕의 위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주왕이 마장군과 싸울 때 노적가리로 위장했다는 기암바위를 지나 (5/30) 대전사를 끝으로 13km가 넘는 산행을 마감한다. 대전사는 신라 신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보광전이 도문화재 2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광전에 삼배를 하고 돌아서는 먹거리 골목엔 유명한 토속 막걸리가 동호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왕산은 산의 모습과 조망은 아쉬움이 많지만, 태고 때부터 흘러내리는 폭포와 내, 골짜기의 바위 병풍은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교통편 : 부산동부터미널에서 부산~주왕산 (하루에 4차례 버스 운행)(07:20, 1:25, 4:25, 5:30) 청송터미날 – 절골 입구마을 이전리 버스 이용(1일 7회 이상, 소요시간 30분) 청송터미날 – 주왕산 10~15분 간격으로 있음. (소요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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