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식의 다시 본 명산] 내장산(內藏山), 40여 종 색색 단풍이 인홍에 불꽃을 피운다 | 뉴스로

[김창식의 다시 본 명산] 내장산(內藏山), 40여 종 색색 단풍이 인홍에 불꽃을 피운다

단풍산 내장산은 197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주위 환경을 잘 정리하여 특히 가을이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단풍 놀이객이 인산인해를 이뤄 그야말로 발디딜 틈없이 북새통을 이룬다.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호남정맥의 중간부분에 있으며 전라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분수령이다.

서쪽의 입암산과 남쪽 백양지구를 합한 총면적 75.8㎢로 예부터 조선8경의 하나로 동구리골짜기에는 임란 때 승병들이 쌓은 내장산성이 있다. 자생하는 단풍이 무려 30여 종이나 되며 색깔 또한 40여 가지에 이르러 현란한 빛을 발할 때는 마음마저 붉게 타 세상사의 시름을 날려 보낸다.

내장사를 중앙에 두고 서래봉, 불출봉, 연지봉, 주봉인 신선봉, 문필봉, 장군봉 등으로 이어지는 매혹의 기암 능선이 말굽형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가히 환상적이라 하겠다. 특히 서래봉은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봉 아래로 바다를 이룬 단풍나무의 물결이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서래봉 중턱에 자리한 수령 700년 된 단풍나무는 높이가 20미터, 둘레 4미터로 내장산 단풍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입증한다. 수많은 능선과 계곡, 각색의 찬란한 단풍, 끊이지 않는 발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장산은 단풍의 명산으로 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으로 취한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특히 「내장산 탐방안내소(케이블카 승강장 옆)」에는 종합전시실, 표본실, 영상실, 자료실, 회의실 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영상실 관람석에 앉으면 3분간 내장산의 곳곳을 안내하는 영상물이 자동으로 방영된다. 전시관은 내장산의 생태계와 주변 옛 주민들의 생활상을 잘 알려주고 있어 한국의 국립공원 탐방 안내소 중 가장 시설이 훌륭한 곳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사진설명: 내장산 / 국립공원 홈페이지 캡쳐)

단풍이 절정을 이룬 10월 말 내장산을 찾았다. 여느 때 보다 설렘이 가득함은 단풍의 계절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내장사 가는 진입로에 가로수 역할을 하는 단풍나무는 푸른빛이 한결 더 짙은 듯해, 때를 잘못 맞추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으로 향했다.(11/30)

2km나 되는 포장길은 끊이지 않는 인파로 물결친다. 단풍이 붉게 물들었는가 하면 푸른 잎도 섞여 조화를 이룬다. 우측 길로 접어들어 매점 앞을 지나 벽련암으로 발길을 잡았다.(12/10)

빨갛게 흐드러진 잎새 사이로 난 넓은 임도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무거웠던 발길이 단풍에 매료되어 가벼워진다. 백련암에 닿았다. 古內藏(고내장)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내장사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앞뜰에 노랗게 핀 아기 단풍이 퍽 인상적이다. 암자를 나와 입구에서 우측으로 돌아 서래봉 1km 팻말 따라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빽빽이 들어선 아름드리 단풍들이 색색으로 이어져 지천을 이룬다.

각지에서 온 산꾼들이 줄을 잇고 환호와 탄성들이 메아리쳐 들려온다. 무성한 산죽 밭을 지나 한바탕 땀을 흘리며 단풍에 매혹되고 나니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서래봉과 월영봉 갈림길 안부에 닿았다. 시야가 트이고 아득히 보이는 주봉인 신선봉을 위시한 기봉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12/45)

우측 빗재길을 버리고 좌측 서래봉 가는 긴 암릉길을 탔다. 시원한 숲 그늘이 진 암릉길은 기복이 반복된다. 손잡이나 발디딤으로 삼을 요철이 많고 위험스런 급경사 구간엔 어김없이 튼튼한 쇠사슬이 설치되어 누구나 안심하고 갈 수 있다. 동서남북이 확 트인 암릉길은 푸른 하늘과 산골짜기마다 피어오른 단풍빛을 조망하기에 아주 훌륭하다. 서래봉(622m) 산정에 닿으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1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소나무 아래 쉼터에는 은은한 솔향기가 풍긴다. 고개를 돌리면 아늑히 보이는 말굽형 봉우리가 손짓한다.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홍엽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 놓은 듯 파노라마를 이룬 풍광이 환상적이다.

넋을 잃고 발길이 절로 멈추게 된다. 기암괴석에 불붙은 단풍은 세속을 질타하는 것만 같다. 자연과 합일(合一)되는 우주의 한 공간이라 하겠다. 점심으로 휴식을 만끽하고 불출봉(佛出峰)을 향했다. 급경사 쇠다리를 올랐다 내렸다 하면 왼쪽 완경사 숲길 절벽 아래로 우회하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사진설명: 내장산 우화정 / 국립공원 홈페이지 캡쳐)

우측은 내장저수지 가는 길이라고 팻말이 알린다. 직진으로 계속가다 서래 약수터를 만나 갈증을 풀었다. 이 부근에 옛날 외도솔과 내도솔이란 암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시 주능선에 올라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연이어진 암릉길을 탔다. 협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게 한다. 조망을 즐기다 어느새 석순(石筍) 암벽으로 우뚝 선 해발 610m의 기봉인 불출봉에 닿았다. 매료된 조망에 시간이 많이 소요 되었다.(3시)

멀리 고창 앞바다가 보인다고 이름붙혀진 망해봉(望海峰 650m)길을 포기하고 좌로 꺾어 원적암 쪽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불출봉 남쪽 암벽에서 불출암(佛出庵)이 있던 반굴형의 불출암지를 보게 된다.

(사진설명: 내장산 불출봉에서 바라본 새해 일출 / 국립공원 홈페이지 캡쳐)

불출암지는 고려광종 26년(서기 975년), 하월선사가 이곳의 암벽에 형성된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암자를 세웠던 자리로서 나한전 등 의 건물은 6·25 사변 때 완전히 불타 버리고 그 흔적만 남아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붉게 타는 풍경 속에서 아래로 내려와 원적암(圓寂庵)의 약수로 목을 축이고 사찰경내를 순례하며 잠시 머물렀다.

고려 선종 4년 적암대사가 창건한 암자로서, 칠간(七間)이나 되던 웅장한 규모가 6·25 사변 때 소실된 후 1961년, 법명 스님이 작은 암자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위의 풍광에 눈이 시리고 앞에 천연 기념물 153호 비자나무 군락이 큰 숲을 이뤄 장관이다. 원적암을 벗어나 내려가면 망해봉 하산길 인 먹뱀이골 삼거리를 만나고 좌측으로 돌면 원적계곡이다.

망해봉 먹뱀이골에서 발원된 물소리를 듣게 된다. 넓은 임도는 산책길로 그저 그만이다. 수림이 하늘을 이고 산새소리, 물소리로 고요와 비경이 만나는 또 하나의 다른 선계가 가을 서정이 물씬 풍기는 내장산의 숨결이다. 발끝에 묻어나는 가을 내음에 취하게 된다.

휴게소에서 토속 막걸리로 피로를 풀고 내장사에 발길이 닿으니 30여 종의 현란한 단풍이 속세를 삼킨 채 피안으로 인도한다. 수많은 인파의 색색가지 옷이 단풍과 어울려 오색바다를 만들어 놓았다.

·내장사(內藏寺)
백제 무왕 37년(636), 영은조사가 50여 동의 대가람을 세우고 영은사라 칭한 이래 조선 중종 34년(1539), 폐찰령으로 소각되었다. 명종 22년(1567), 회목대사가 사우(寺宇)를 중창한 후 정조 3년(1779), 영운대사가 대웅전을 중수하는 등 4회에 걸쳐 중수하였다. 근세에는 백합명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켰으며 영은사를 내장사로 호칭하게 되었다. 6·25 사변으로 1951년 1월 12일 소실된 것을 1958년, 주지 다천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1971년, 국립공원의 지정과 함께 사찰복원 사업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른다.

내장산은 단풍의 비경과 기암기봉이 한데 어울려 말굽형으로 병풍처럼 내장사를 둘러싸고 있다.

입압산과 백암산을 어깨동무하며 산맥을 이어 절경을 이룬 호남 5대 명산으로 손색이 없고, 어느 봉우리를 올라도 봉마다 내장사로 내려오는 산길이 열려있어 체력에 따라 자유자재로 등정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산꾼들에게는 좋은 명산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교통편: 정읍에서 내장사 주차장까지 시내버스가 종일 운행하며, 주차장에서 일주문(2km)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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