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조의 고전 이야기] 더럽고 배고파서 못 살겠네 | 뉴스로

[김미조의 고전 이야기] 더럽고 배고파서 못 살겠네

[편집자주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칼럼입니다사회적 자본인 지식과 경험·노하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본 코너는 종횡무진포럼·가디언·펄스㈜·한가향’이 공동후원 합니다.

– 만언사(萬言詞), 안도환

이보다 더 비참하긴 힘들 거야.

엊그제는 부귀자요, 오늘 아침 빈천자라.
부귀자 꿈이런가, 빈천자 꿈이런가.
장주 호접 황홀하니 어느 것이 정 꿈인가.

안도환은 지금 처한 현실이 꿈만 같다. 분명 얼마 전까진 비단옷을 입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런데 요 며칠 추자도의 가난한 집 담 아래 땅바닥에서 잠을 자며 집주인의 눈치나 살피는 신세다.
‘그래, 이 집주인, 처음부터 패악질을 부려댔었지.’
며칠 전 일이다.

산악 같은 높은 물결 뱃머리를 둘러치네.
크나큰 배 조리 젓듯 오장육부 다 나온다.
천은을 입어 남은 목숨마저 다하게 생겼구나.

한양에서 멀고도 먼 추자도까지 오는 길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특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땐 큰 파도를 만나 속엣것을 다 토해내고 이러다 죽지 싶은 공포감에 후들후들 몸까지 떨었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추자도에 도착했더니 저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눈엔 경계심이 가득하다.
‘저 귀양다리, 저놈 저거. 우리 집에서 묵게 되면 어쩌나.’

어디로 가잔 말고, 뉘 집으로 가잔 말고
눈물이 가리우니 걸음마다 엎더진다.
이 집에 가 의지하자 가난하다 핑계 대고
저 집에 가 의지하자 연고있다 칭탈하네.

유배 간 이는 마을 사람 중 한 명의 집에 얹혀살아야 한다. 그런데 다들 몸을 사린다. 보다 못한 관리가 마을 남자 중 한 명을 지목해 ‘당신이 저 이를 데려가시오.’라 한다.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남자는 기가 찬다. 속이 뒤집힌다. 하지만 관리 앞이라 뭐라 대꾸조차 하지 못한다. 관리가 돌아가자 남자는 물건까지 집어 던지며 길길이 화를 낸다.

관리에게 하지 못한 말을 만만한 내가 듣네.
세간 그릇 흩던지며 역정 내어 하는 말이,
이 나그네야. 헤아려 보소. 내가 아니 불쌍한가.
이집 저집 잘 사는 집 한두 집이 아닌데,
구태여 내 집으로 연분이 있어 와계시는가.
내 세간살이 간소한 거 보면 모르나.
앞뒤에 전답 없고 물속으로 생계를 꾸리며
앞 언덕에 고기 낚아 윗동네에 장사 가니,
우리 세 식구 먹고살기도 어렵거든.
양식 없는 나그네는 무엇 먹고살려는고.

남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왜 나란 말인가. 왜 내가 저 군식구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가.
길길이 날뛰어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쩔 것인가. 관리가 그렇게 하라 했으면 해야 한다. 남자는 군식구를 제집에 데려갔으나 방까지 내주지는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방이라곤 제 식구가 쓰는 방뿐이다. 남자는 안도환에게 초석(볏짚 따위로 엮어 만든 자리)을 건네며 담벼락 아래를 가리킨다.
“저기, 저쪽에서 자소.”

(집주인이) 뛰자리 한 잎 주어 담 아래에 거처하니
차가운 땅엔 습기가 오르고, 짐승이 많기도 많구나.
발 남은 구렁배암 뼘 넘운 청진의라.
(구렁이와 푸른 빛을 띤 지네까지)
좌우로 둘렀으니 무섭고도 징그럽다.

안도환은 밤새 눈물을 흘리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런 생활이 며칠 혹은 몇 달 만에 끝이 난다면야 못 견딜 것도 없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이 없다. 차라리 자신이 권력다툼에 밀려 유배 온 사대부라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젠가 풀려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는 중인이다. 하늘이 신분은 주지 않았지만, 좋은 머리를 주었다. 그 덕에 정조의 심부름을 맡아보고 궁궐의 회계까지 담당하는 대전별감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조금만 꾀를 부려도 이런저런 재물을 착복하기 좋은 자리였다. 그런데 들켜버렸다. 조정에선 저를 두고 죽이니 살리니 의견이 분분했다. 운 좋게 죽지는 않았다. 유배지로 내쳐지는 것으로 결말이 났으니 따지고 보면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몸과 마음이 고생스러운 걸 어쩌란 말인가. 감사는커녕 거지보다 못한 꼴이 된 것에 기가 찰 노릇이다.
다음 날 아침 집주인이 준 밥을 보곤 또다시 제 신세를 한탄한다. 껍질도 제대로 벗겨지지 않은 보리로 지은 밥이다. 그 옆엔 무장떡이 한 종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이런 아침이라도 얻어먹지 못하고 굶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을.
문제는 또 있다.

여름날 긴긴 날에 배고파 어려워라.
의복을 돌아보니 한숨이 절로 난다.
남방염천 찌는 날에 빨지 못한 누비바지,
땀이 배고 때가 올라 굴둑 막은 덕석인가.
덥고 검기 다 바리고 내암새를 어이하리.

아구야. 냄새가, 냄새가 말이 아니다. 남쪽 추자도의 여름은 한양보다 훨씬 덥다. 겨울에나 입는 누비바지까지 입고 있으니 남들보다 더 많은 땀을 쏟아낸다. 여벌의 옷이 없어 빨래도 못 한다. 입고 있는 옷을 빨면 벌거숭이로 다녀야 하는데, 사람 체면에 그럴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 체면이라는 게 옷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아마도 할 일 없어 먹고 살 일을 생각하고
고기 낚기 하자 하니 배 멀미를 어찌하고
나무 베기 하자 하니 힘 모자라 어찌하며
자리 치기, 신 삼기는 모르거든 어찌하리
어와 할 일 없다 동냥이나 하여 보자.

제 먹을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제 입에 들어갈 걸 제가 찾아 먹어야 그나마 사람취급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국, 사람 취급받기도 힘든 동냥으로 끼니를 이어가기로 한다. 체면이고 뭐고 간에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탈망건 갓 숙이고 홑중치막 띠 끄르고
앞만 남은 헌 짚신에 세 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빈 단뱃대는 소일거리로 챙기고서
비슥비슥 걷는 걸음걸음마다 눈물 난다.
세상 인사 꿈이로다, 내 일 더욱 꿈이로다.

달랑 살만 남은 부채로 얼굴을 가린다고 가려질 리가 없다. 설혹 얼굴을 가린다 해도 누가 누구인지 다 아는 뻔한 동네에서 그를 알아보지 못할 사람도 없다. 실제로 그가 동냥을 나가자마자 어린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귀양다리 온다.’ 놀려댔다. 이 모든 일이 그저 꿈만 같다. 계속 꿈만 같다.

부끄러움이 앞서니 동냥 말이 나올 리가 있겠는냐.
구걸할 때 부르는 장타령이 입안에서 맴돌고
허리를 굽힐 때는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는구나.
내 허리 불쌍해서 비천한 자에게까지 절을 하는구나.
내 인사 순서도 없이 종에게 존대로다.
(중략)
동냥도 꿈이로다, 등짐도 꿈이로다.
뒤에서 당기는 듯 앞에서 미는 듯 몸을 주체할 수 없고
아무리 굽혀도 자빠지니 어찌하리.

나름 높은 관직까지 오른 체면에 자신의 상황을 꾸며 쓸 만도 하지만, 안도환은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자신의 일상을 표현한다. 자학에다 해학까지 어찌나 양념을 잘 치는지, 몇몇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고 만다. 안도환 본인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테지만, 이처럼 솔직하고 귀여운 유배 시가는 처음 본다.

나는 죄가 없어요, 다들 그렇게 말하지.
최초의 유배 시가는 고려 시대 정서가 쓴 ‘정과정곡’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정서는 인종과 동서 간으로 왕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인종이 죽고 그의 맏아들인 의종이 즉위한 후엔 참소를 받아 고향인 동래로 유배를 가게 된다. 당시 의종은 ‘머지않아 다시 부를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달라.’ 약속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고자 그는 거문고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정과정곡’이다.

내 님을 그리자와 우니나니
산접동새와 비슷하요이다.
아니시며 거츠리신들 (모든 것이 아니며 거짓인 줄)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르시리이다.(새벽 달과 새벽 별은 압니다.)
넋이라도 님과 함께 지내고저.
(내가 죄가 있다고) 우기시는 이 누구십니까.
과도 허물도 천만 없습니다.
뭇 사람들의 참소를 믿지 마소서.
슬퍼구나.
님이 나를 하마 잊으셨는가.
아소, 님하. 다시 들으시어 사랑하소서.

정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나는 죄가 없다. 그러니 다시 사랑해달라.’이다. 이 말은 이후 등장한 유배 시가의 표본처럼 사용된다. 그런데 이를 단번에 깨트린 이가 나타나 버렸다. 안도환이다. 그는 ‘만언사’에서 ‘나는 죄가 없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재물을 취했고, 그 죄로 유배형을 받았다. 실제로 죄를 지었으니 감히 ‘죄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입을 다물고 있자니 병이 날 것만 같다. 서럽고 비참한 일들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도구가 글이다. 그래서 제목도 만언사(萬言詞)다. 만언사는 ‘만 개의 말’로,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가사는 총 3,510구로 그 길이가 상당히 길다.

만언사를 쓸 때만 해도 안도환은 자신이 추자도에서 벗어날 일은 없을 것이라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추자도에서 지낸 건 단 1년이다. 추자도로 유배 온 양반들이 많아지자 안도환은 근처 다른 섬으로 옮겨졌는데, 그 얼마 후엔 아예 유배에서 풀려난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정조가 안도환을 풀어준 이유엔 ‘만언사’가 있다고 한다. 당시 만언사를 읽은 이들은 안도환의 처지가 얼마나 불쌍했던지 눈물 콧물까지 쑥 뺐다고 한다. 이러한 독자 중에는 궁녀들도 있었다. 궁녀 사이에서 도는 소문은 정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정조도 만언사를 읽고는 안도환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게 되어, 유배 해제 명단에 안도환을 넣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떠나 당시 만언사가 여러 사람의 감성을 꽤 건드렸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적 묘사와 저를 꾸미지 않은 솔직한 글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으니.

*김미조 칼럼니스트
김미조는 소설을 쓰면서 인문학책을 기획, 집필하고 있다. 장편소설 『천국의 우편 배달부』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니는 혼자가 아이다』,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피노키오가 묻는 말』, 수필집 『엄마의 비밀정원』, 인문서 『국제 분쟁, 무엇이 문제일까.』, 『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등이 있다. 또, 포천 문화재단이 주관한 뮤지컬 『화적연-용신과 도깨비 공주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김미조는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가 가능한 작가로, 앞으로도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뉴스제보 jebo@newsro.kr

<©국가정보기간뉴스–뉴스로,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뉴스로 주필ㆍ칼럼리스트


circular-profile-leehosun
circular-profile-jeon
이기원-칼럼하단-바로가기-원형
이도국-역사기행-칼럼하단-바로가기-원형
circular-profile-kimchangsik
circular-profile-kim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