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고성군
'대한독립만세' 그 날의 함성, 다시 한번!
AI 요약1910년 이후 지속되던 일제의 무단통치는 일본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2.8독립선언과 고종황제의 붕어(崩御: 황제의 죽음을 일컫는 말)를 계기로 3.1 만세운동으로 전개됐다. 3월 1일 학생대표들은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고 시민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파고다 공원의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시가행진을 했다...

1910년 이후 지속되던 일제의 무단통치는 일본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2.8독립선언과 고종황제의 붕어(崩御: 황제의 죽음을 일컫는 말)를 계기로 3.1 만세운동으로 전개됐다.
3월 1일 학생대표들은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고 시민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파고다 공원의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시가행진을 했다. 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경상남도의 시위운동은 초기에는 부산과 마산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되는 데 그쳤으나, 3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치열한 시위 운동이 전개됐다.
고성 최초의 만세 시위 운동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1919년 3월 15일 밤,
의열단에 가맹하여 제1차 암살파괴사건에 관련되었던 진주사람 이주현이 고성읍 선동리로 박진택을 찾아왔다.
이주현은 고성에서도 독립만세를 거행할 것을 설득하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후 돌아갔다. 이에 배만두, 이상은, 김상욱 등은 함께 3월 17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만세시위 거사는 1차 배만두, 2차 이상은, 3차 김상욱이 각 학생, 기독교인, 농민을 동원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일본 헌병들이 배만두의 가택에 들이닥쳐 그를 검거하면서 결행되지 못하였다. 이때 동경정칙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고성읍에 와있던 안태원은 귀향 중에 있던 서주조와 협의한 후 고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비밀화합을 거듭해 갔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지금 각지에 있어서는 일개 농부까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고성은 무엇 때문에 이를 결행하지 않는가? 지금이야말로 수수방관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하여 학생들에게 애국궐기 운동을 호소했다.
이에 안태원, 서주조를 주동으로 학생 200명이 3월 22일 정오 고성읍 시장에 모여 독립만세를 고창한 후 시위를 전개했다.
고성읍 만세운동은 경찰의 탄압과 주동인물의 검거로 오래 계속되지 못하였으나 민중들에게 커다란 자각과 용기를 불러온 단초가 되었다.
100년 전 배둔장터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최낙종, 배만두 선생(왼쪽부터)
고성군(군수 백두현)에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오는 3월 19일 회화면 배둔리 3.1운동 창의탑 앞에서 '제100주년 3.1절 기념'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을 개최한다.
'제100주년 3.1절 기념'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는 구만면 국천사장에서 만세삼창 및 나팔소리 재현을 시작으로 회화119안전센터까지 카퍼레이드를 실시하며, 회화119안전센터에서 창의탑까지 도보로 시가행진을 실시하여 100년 전 그날의 벅찬 감동을 재현할 예정이며,
회화면 3.1운동 창의탑 앞에서는 고성오광대의 “독립의 북소리”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헌화 및 분향,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 삼창, 만세운동참가자 개인약전 및 유족소개, 오찬 등 군민이 함께 화합할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기사 정정 신청뉴스제보 jebo@newsr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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