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조의 고전 이야기] 배는 왜 만들어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오?
AI 요약[편집자주 ]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사회적 자본인 지식과 경험·노하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본 코너는 ‘종횡무진포럼·가디언·펄스㈜·한가향 ’이 공동후원 합니다. -선상탄(船上歎), 박인로 선상탄(船上歎), 배 위에서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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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사회적 자본인 지식과 경험·노하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본 코너는 ‘종횡무진포럼·가디언·펄스㈜·한가향 ’이 공동후원 합니다.
-선상탄(船上歎), 박인로
선상탄(船上歎), 배 위에서 탄식하다.
1592년(임진년) 5월,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은 장장 7년이나 이어졌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운이 다 걷힌 것은 아니었기에 선조는 박인로를 진동영(부산)에 보낸다.
(임금께서) 늙고 병든 몸을 주사로 보내시니,
을사년 여름에 진동영에 내려오니,
관방 중지에 병이 깊다 하여 앉아 있겠느냐.
-선상탄.
비록 늙고 병들었으나 변방의 중요한 요새에서 제 안위를 살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올라가 눈을 부릅뜨고 대마도 쪽을 본다. 그런데 슬금슬금 무언가가 마음에 들어선다. 원망이다.
‘황제 헌원이 문제야. 그가 문제야.’
황제 헌원, 당신이 문제요.
황제 헌원이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걸까?
황제 헌원(또는 헌원씨)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삼황오제 중 하나다. 삼황(세 황제)은 복희, 여와, 신농이라고도 하고, 복희, 신농, 황제라고도 한다. 이외에도 여러 인물을 섞은 조합이 존재한다. 또, 헌원씨는 삼황 중 하나가 아니라 오제(다섯 제왕)의 첫 번째 황제로도 전해진다. 열 개가 넘는 문헌마다 기록이 다르기에 정확한 바는 알 수 없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 중엔 황제 헌원과 치우의 싸움이 있다. 치우는 구리로 된 머리, 쇠로 된 이마, 네 개의 눈, 여섯 개의 팔, 소의 뿔과 발굽을 지닌 요괴로 묘사된다. 하지만 중국 동북 지방에서는 전쟁의 신으로 숭상되기도 한다. 요괴이자 전쟁의 신이기도 한 치우는 헌원과의 싸움에서 패배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 또한 문헌마다 달리 기록되어 있기에 전투의 이유나 둘의 전투력, 싸움에 진 치우의 행방 등의 내용이 일치하진 않는다.
다만 대체로 황제 헌원은 선한 존재로, 치우천왕은 악한 존재로 대립점에 서 있다. 헌원의 승리는 곧 악한 존재를 물리친 선한 존재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한편으론 황제 헌원은 문명을, 치우천왕은 자연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황제 헌원이 수레와 배를 만든 인물로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인로는 바로 이 부분을 짚는다.
‘배를 왜 만들었소? 무엇하려고 배를 만들었소?’
아니, 배를 만든 게 왜 문제일까. 박인로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배 위에 서성거리며 예와 오늘을 생각하고, 어리석고 미친 마음에 황제 헌원을 원망하노라.
대양이 아득히 넓어 천지에 둘려 있으니, 진실로 배 없으면 풍파 만 리 밖에서 어떻게 이 나라를 엿보겠는가.
(황제 헌원은) 무슨 일 하려 배를 만들었는가. 장구한 세월에 무한한 폐단이 되어, 온 세상 모든 백성의 원한을 만드는구나.
-선상탄.
그러니까 왜적이 바다를 건너 이 땅으로 쳐들어올 수 있었던 건 배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 배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황제 헌원을 탓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은 싹둑 자르고, 그저 ‘배’ 하나에 그 모든 원인을 전가하는 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다. 그런데 박인로는 정말 몰라서 이런 문구를 썼을까?
박인로는 13세에 칠언절구의 한시 <대승음(戴勝吟)>을 지어 주위를 놀라게 했을 정도로 시재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의병으로 나서 싸웠으며, 관료가 된 후에는 진동영의 통주사까지 되었다. 이런 이가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아마도 그는 짓밟힌 조선 산하와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곤 무엇이라도 붙들어 탓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무엇이 고대 중국의 헌원일 뿐이다. 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선상탄> 중간 부분에서 다시 헌원의 배 이야기를 꺼낸다.
두어라, 이미 지난 일을 탓해 무엇하겠는가. 공연한 시비는 내던져 두자. 곰곰이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지나친 고집이다. (중략) 정승 자리와도 바꾸지 않을 경치, 좋은 강산에 부평같이 물에 떠다니는 어부의 생활이 한 조각의 작은 배가 아니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선상탄
배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 많은 배 중에서 자연을 즐기기 좋은 놀이 배가 아니라 병장기가 가득한 병선에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헌원을 탓할 것도 없다.
어쩌나. 그럼 누구를 탓해야 성이 찰까.
그는 두 번째로 탓할 인물로 진시황을 끌어들인다.
진시황, 그대가 문제요.
진시황은 또 뭐가 문제라는 것일까.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해 진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중국의 중앙집권 체제의 기반을 마련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자와 화폐, 도량형을 통일하고, 도로와 운하를 건설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엔 ‘폭군’이 따라붙는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가혹한 폭정을 일삼아서다. 당대 지식인들이 이를 비판하자, 진시황은 민간의 서적을 모두 불태우고, 460여 명의 유생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 죽여 버리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시행한다. 그는 그를 비판하거나 그에 반하는 이들을 죽이는 것으로 제 권력과 욕심을 지켜내고자 했다. 아마도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큰 권력을 지녔어도 그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삶의 연속성’이다.
‘죽고 싶지 않다. 죽어도 죽고 싶지 않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오히려 그를 죽은 자로 만든다. 지금의 삶이 아니라 나중의 죽음만 생각하는 사람에겐 현재가 없다. 현재를 보거나 누리지 못하는데, 살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화려한 궁전과 병마상 7,000여 개가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무덤을 만들거나 불로장생의 명약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세계 곳곳에 보내는 등, 그의 삶은 죽음을 준비하거나 죽음을 피하는 것에 맞춰진다. 거대한 궁전은 수십만 명의 살과 피를 갈아 넣어 만들어냈지만, 불로장생의 명약은 수십만 명이 아니라 수천만 명을 희생시켜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런데도 불로장생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왜국에 불로장생의 명약이 있다고 합니다.’는 서북의 말을 믿어 버린다. 그는 서복에게 많은 돈을 주고 명약을 찾아오라 명한다. 서복은 동남동녀 3천 명을 이끌고 일본으로 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애초 서복의 말은 거짓이었다.
어즈버, 깨달으니 진시황의 탓이로다. 배 비록 있다 하나 왜(일본)를 아니 만들었던들, 일본 대마도에서 빈 배가 절로 나올 것인가? 누구 말을 믿어 듣고 동남동녀를 그토록 많이 섬에 들어가게 해서 통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미치게 하였느냐.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는 약을 얼마나 얻어 내어 만리장성 높이 쌓고 몇 만 년이나 살았던가? 진시황도 남과 같이 죽어가니, 사람들을 보낸 일이 유익한 줄을 모르겠다.
아, 돌이켜 생각하니 서복 무리가 매우 지나친 일을 하였다. 신하의 몸으로 망명 도주한 것인가? 신선을 만나 불로초를 얻지 못하였거든 얼른 돌아갔어야지. 그랬더라면 섬나라 오랑캐의 씨가 퍼지지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 수군(水軍)인 나의 근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선상탄
진시황은 기원전 210년, 50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진나라도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남과 같이 죽어가니, 사람들을 보낸 일이 유익한 줄을 모르겠다.’는 박인로의 한탄은 뒤이어 진시황의 신하들을 탓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당시 일본으로 간 서복 무리의 자손들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들이라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하지만 헌원이나 진시황을 탓한 것처럼 그렇게라도 근심의 원인을 찾아내고자 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국단심(憂國丹心).
처음엔 헌원, 두 번째는 진시황, 마지막은 서복과 그 일행들을 탓한다. 그래서 이 가사의 제목도 선상탄(船上歎)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숨 쉬고 탄식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누군가를 탓하는 것으로만 끝내려니 미진하다. 그는 유학자로서 지닌 덕목과 의지를 글의 끝에 풀어낸다.
때때로 머리를 들어 임금님 계신 곳을 바라보며, 때를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린다. 우리나라 문물이 한나라와 당나라에 뒤지랴마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왜적의 흉악한 꾀에 빠져 만고에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안고 있구나. 백분지 일도 씻어내지 못했거늘, 이 몸이 비록 변변하지는 못해도 신하가 되어 임금을 지척에서 모시지는 못하지만,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에 충성하는 마음이야 어느 때라고 잊을 수 있겠는가.
-선상탄
박인로가 진동영으로 내려간 건 선조 38년(1605년)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지 7년이 지났을 즈음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오늘날로 따지면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남자의 평균 수명이 38세~ 40임을 고려한다면, 그가 자신을 늙은이로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그의 인생 전반에서 45세는 삶의 중간지점을 넘긴 시기가 된다. 그는 1561년에 태어나 1642년에 죽는다. 그러니까 8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다.
박인로는 진동영에서의 임무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난뿐이다. 관직에 있지 않으니 받을 수 있는 녹봉도 없다. 그렇다고 여느 농민들처럼 농사를 짓지도 못한다. 사대부지만 사대부로 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농부로도 살지 못하는 그의 일상은 그야말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이를 사실적으로 잘 묘사한 작품이 누항사(陋巷詞)다. 누항사의 ‘누항’은 ‘누추한 거리’로 누항사는 ‘누추한 거리의 이야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김미조 칼럼니스트
김미조는 소설을 쓰면서 인문학책을 기획, 집필하고 있다. 장편소설 『천국의 우편 배달부』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니는 혼자가 아이다』,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피노키오가 묻는 말』, 수필집 『엄마의 비밀정원』, 인문서 『국제 분쟁, 무엇이 문제일까.』, 『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등이 있다. 또, 포천 문화재단이 주관한 뮤지컬 『화적연-용신과 도깨비 공주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김미조는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가 가능한 작가로, 앞으로도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김미조 칼럼니스트
김미조는 소설을 쓰면서 인문학책을 기획, 집필하고 있다. 장편소설 『천국의 우편 배달부』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니는 혼자가 아이다』,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피노키오가 묻는 말』, 수필집 『엄마의 비밀정원』, 인문서 『국제 분쟁, 무엇이 문제일까.』, 『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등이 있다. 또, 포천 문화재단이 주관한 뮤지컬 『화적연-용신과 도깨비 공주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김미조는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가 가능한 작가로, 앞으로도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기사 정정 신청뉴스제보 jebo@newsr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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