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조의 고전 이야기] 누가 너를 가두었니?
AI 요약[편집자주 ]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사회적 자본인 지식과 경험·노하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본 코너는 ‘종횡무진포럼·가디언·펄스㈜·한가향 ’이 공동후원 합니다. <어이 못 오더냐, 무슨 일로 못 오더냐> 외 6편. 기발하...
![[김미조의 고전 이야기] 누가 너를 가두었니?](https://img.newsro.kr/wp-content/uploads/2024/04/김미조-3타이틀771-x-434-픽셀.jpg)
[편집자주 ]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사회적 자본인 지식과 경험·노하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본 코너는 ‘종횡무진포럼·가디언·펄스㈜·한가향 ’이 공동후원 합니다.
<어이 못 오더냐, 무슨 일로 못 오더냐> 외 6편.
기발하고 재미있지만, 작자 미상.
사설 시조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 그 표현이 기발하고 자유분방해서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설 시조 대부분은 ‘작자 미상’이다. 어느 날, 어느 때, 제 현실과 제 마음을 시로 표현했던 사람은 자신의 작품에 제 이름만은 쓰지 못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그저 무명씨로 살아야만 했던 평민의 문학이어서다. 작가를 모른다고 작품의 빛까지 바라진 않는다. 오히려 뛰어난 상상력과 거침없는 표현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이런 감탄엔 늘 아쉬움이 뒤따른다.
‘이렇게 재미있는 표현들을 더 많은 사람이 즐겼으면 좋겠다.’
아쉬움의 정체는 이런 것이다.
또, 사설 시조는 평시조와 달리 주제도 다양하다. 지배층에 대한 풍자뿐 아니라 장사치의 현학적 태도를 비꼬기(1)도 하고, 다양한 여성들을 나열하며 각자 임에겐 사랑받는 이들이니 모두 아름답다는 말(2)을 하기도 한다.
1.
댁들아, 동난지이 사오. 저 장사야, 네 무엇이라 외치는가. 사자.
외골내육(外骨內肉), 양목(兩目)이 상천(上天), 전행후행(前行後行), 소(小)아리 팔족(八足), 대(대)아리 이족(二足), 청장 아스슥하는 동난지이이 사오.
장사치야, 거북하게 말하지 말고 그냥 게젓이라 하려무나.
2.
갓나희들이 여러 층이더라.
송골매 같기도 하고, 줄에 앉은 제비 같기도 하고, 온갖 꽃들이 핀 뜰에 두루미 같기도 하고, 크고 작은 푸른 물결 위에 비오기 같기도 하고, 땅에 앉은 소리개 같기도 하고, 썩은 등걸에 부엉이 같기도 하네.
그래도 다 각각 임의 사랑이니 각자가 다 뛰어난 미인인가 하노라.
반면, 평시조는 대체로 연군, 충절, 효, 강호한정이라는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평시조도 있지만, 이러한 주제를 다룬 시조의 작가는 대체로 황진이와 같은 기생이다.
사랑과 이별은 사설 시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다. 권세와 돈이 없다고, 사랑도 없을까. 조선 후기에도 사람들은 열심히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아팠고, 급기야 이별을 맞이하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러한 마음을 다룬 사설 시조 여섯 편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소개하고자 한다.
어이 못 오더냐, 누가 너를 가두더냐?
어이 못 오더냐, 무슨 일로 못 오더냐.
너 오는 길 위에 무쇠로 성을 쌓고, 성안에 담쌓고, 담 안에 집을 짓고,
집 안에 뒤주 놓고, 뒤주 안에 궤를 놓고, 궤 안에 너를 결박하여 놓고,
쌍배목 외걸새에 용거북 자물쇠로 깊이깊이 잠갔더냐. 그래서 너 아니 오더냐.
한 달이 서른 날인데 날 보러 올 하루가 없으랴.
-작자 미상
여자는 기다렸다. 오늘은 오겠지,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라도 오겠지. 매일 매일 기다렸다. 그런데도 남자는 오지 않는다. 온갖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어디 아픈가, 다쳤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지 않을 수가 없는데. 소식 하나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러다 문득 남자의 마음을 의심한다.
이놈, 이 새끼. 마음이 변했나.
치미는 부아에 심한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렇다고 욕을 뱉어내는 것으로 제 마음을 더럽히지 않는다. 열거와 과장을 활용해 우아하게 상대를 재촉한다.
‘누가 너를 가두고 붙잡은 것이 아니라면, 빨리 와라.’
바람도 쉬어 넘는 저 고개를 나는 단숨에 넘고 말지.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도 쉬어 넘는 고개
산(山)진이 수(水)진이 해동청 보라매도 다 쉬어 넘는 좋은 장성령 고개
그 너머에 임이 왔다고 하면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넘어리라.
-작자 미상
여자는 뜸을 들이는 남자와 다르다. 제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임이 저 너머에 있다면 바람과 구름도 힘들어 넘지 못하는 고개를 단숨에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임이 도무지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 마음이 급한 나머지.
님이 오마 하거늘 저녁밥을 일찍 지어 먹고,
중문 지나 대문 나가 문지방 위에 뛰어올라 앉아,
이마에 손을 짚고 님이 오는가 보러 건너편 산을 바라보니,
거머횟들한 것이 서 있기에, 저거야 님이로구나 하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신 벗어 손에 쥐고, 허둥대며 진 곳 마른 곳 가리지 않고,
우당탕 건너가서 정 넘치는 말 하려고 곁눈으로 흘깃 보니,
작년 칠월 사흗날 껍질 벗긴 주추리 삼대가 살뜨리도 나를 속였구나.
모쳐라, 밤이기 망정이지, 낮이면 남 웃길 뻔했구나.
-작자 미상
기다리고 또 기다린 임에게서 기별이 왔다.
‘오늘 갈게.’
여자는 남자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가만있어도 올 사람은 오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 저 멀리 건너편 산에 검은빛과 흰빛이 뒤섞인 무언가가 이쪽으로 오는 듯 보인다. 임이구나.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여자는 냅다 뛰기 시작한다. 뛰다 보니 신이 무겁다. 신을 벗는다. 버선이 미끄럽다. 버선을 벗는다. 맨발로 뛰고 또 뛰는 동안 여자의 시선은 오로지 거무횟들한 것에 가 있다. 님이다, 님이다. 진 땅을 밟아 발바닥이 더러워져도, 정신없이 뛰는 통에 옷매무새가 헝클어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예쁘게 보이고자 곱게 단장했지만,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임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우당탕 허둥대긴 했어도 뛰는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던 여자는 기어코 임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마음 같아선 바로 얼싸안고 싶지만, 막상 임을 보니 부끄럽다. 곁눈으로 흘낏 임을 본다.
아뿔사.
임이라 여겼던 것은 임이 아니었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 서 있는 삼의 줄기였다. 차라리 다행이다. 어두워서. 여자는 제 행동에 멋쩍어 중얼거린다. 어두워서 착각했지만, 어두워서 덜 부끄럽다. 정신없이 절절했던 마음은 살짝 방향을 틀어 웃음을 자아낸다.
이눔의 개, 나한테 왜 이러니?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 요 개같이 얄미우랴.
미운 님이 오면 꼬리를 홰홰 치며 뛰락 내리 뛰락 반겨 내닫고
고운 님이 오면 뒷발을 버둥버둥 므르락 나으락 캉캉 짖어서 돌아가게 한다.
쉰밥이 그릇그릇 난들 너 먹일 줄이야 있으랴.
-작자 미상
임이 왔다. 온다 하고 오지 않았던 임이, 여자의 마음을 흔들며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주었던 그 임이. 그런데 집에서 키우는 개가 문제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은 남자에겐 애교를 부리던 놈이 그토록 기다렸던 임에겐 공격적이다. 그러지 마라. 왜 그러냐. 여자는 안달한다. 개는 눈치가 없다. 안달하는 여자의 표정을 ‘두려움’으로 읽어 버린다. 우리 주인이 저 남자를 무서워하네. 더 크게 캉캉 짖는다. 봐, 내가 널 어떻게 지키는지. 내가 얼마나 용감한지. 개의 성화에 남자는 발걸음을 돌려 버린다. 망연자실한 여자는 이를 악물고 개를 노려본다. 너 때문이다. 쉰 밥이 몇 그릇이나 생겨도 절대 너한텐 주지 않을 거다. 개는 눈치가 없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저 남자가 돌아선 게 진짜 내가 짖어서일까.
너를 위해 이까짓 머리카락쯤이야.
서방님 병이 들어도 두고 드릴 것이 없어.
종로 시장에 머리카락을 팔아 배 사고, 감 사고, 유자 사고, 석류 샀다가,
아차차, 잊었구나. 오화당을 잊어버렸구나.
수박에 숟가락 꽂아 두고 한숨 겨워하노라.
-작자 미상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여자는 결혼했다. 제 마음을 휘어잡았던 임과의 결혼 생활은 여자에게 꽤 큰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가 병이 들어 버렸다. 부엌엔 먹을거리 하나 없다.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어도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왔는데 남편의 병으로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여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기로 한다. 가체를 찾는 이가 많으니 사람 머리카락은 꽤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여자는 화채 재료를 산다. 배와 감, 유자와 석류, 수박까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오색으로 물들여 만든 둥글납작한 중국 사탕인 오화당을 깜박 잊고는 사지 못했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만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이왕이면 몸보신에 좋은 음식을 사지, 과일이 웬 말이냐?”
그럼 여자는 이렇게 답했을지도 모른다.
“달콤하니 맛난 것을 먹이고 싶어서 그러지. 기분이라도 좋아지게.”
결국, 너는 나를 떠나는구나.
나무도 돌도 바위도 없는 산에서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 마음과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줄도 끊어지고, 돛대도 꺾이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리만리 남고, 사면이 검어 어둑하고,
천지 적막 사나운 파도 치는데, 해적을 만난 도사공의 마음과
엊그제, 임을 여윈 내 마음을 어떻게 비교하리오.
-작자 미상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이 있다.
다른 이가 죽을병에 걸렸거나 힘든 일에 괴로워하면 마음이 짠할 뿐, 당장 내가 아픔을 느끼는 건 내 손톱 밑 가시인 건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대체론 이 마음을 숨긴다.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한 이에게 ‘내가 더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는 자신의 아픔을 과감하고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것도 죽을 위기에 처한 까투리 한 마리와 도사공의 처지와 비교하면서. 비교는 할 수 있는데, 하필이면 까투리와 도사공일까. 기발하기까지 한 이 생각이 궁금해 나름 상상해 본다.
남자가 죽었다.
눈알이 팽팽하니 아프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누웠다, 앉았다, 섰다가, 이리저리 걷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어떻게 해도 숨쉬기가 힘겹다. 긴 숨을 내쉬다가 짧게 헉헉거린다. 잇새로 울음을 밀어내다가 문득 허망한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 한 마리, 숨을 곳을 찾는 듯 허둥거리고 있다.
차라리 저 까투리가 나보다 낫다.
여자는 생각했다.
그러다 곧 언젠가 들었던 도사공의 이야기를 기억해낸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 나간 배가 망가졌다. 심지어 큰바람과 파도에 휩쓸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는데, 해적까지 만나고야 만다. 이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을까. 그런데 그 도사공이 죽었다고 했던가, 살았다고 했던가.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
지금 여자는 그 어떤 위험에 처한 존재보다 더 큰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런데 진짜 죽는 게 낫나?
여자는 치맛자락의 먼지를 탁탁 털며 일어선다. 저 까투리도 불쌍하지, 그 도사공도 불쌍하지. 그렇다고 지금 내 마음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장황한 열거와 과장으로 제 마음을 표현하니 한결 편안해졌다. 숨을 쉰다. 숨을 고른다. 이래서 사람은 제 마음을 솔직히 표현할 필요가 있다니까.
노래 삼긴(만든) 사람 시름도 많기도 많았구나.
일러 다 못 일러 (노래로) 불러 풀려 했던가.
진실로 풀릴 거면 나도 불러 보리라.
-신흠(1566~1628년)
고통의 유쾌한 정수기, 풍자와 해학
웃음은 바짝 긴장한 근육을 풀어준다. 이는 곧 마음의 긴장을 가라앉히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웃음은 불쾌하거나 고통스럽거나 슬플 때 가질법한 긴장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효능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를 가장 잘 활용한 문학 장르가 사설 시조다.
사설 시조는 ‘풍자와 해학’이 특징이다. 풍자는 대상을 비판할 때에도 웃음을 유발하며 빙 둘러 말하는 것이고, 해학은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다. 둘 다 웃음이 깃들어 있다. 정색하고 얼굴을 붉히는 대신, 과장과 왜곡을 통해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긴장이 풀어지고, 힘겹게만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단 몇 초, 몇 분일지라도.
당연한 말이지만 삶의 고통은 웃음으로 사라지진 않는다. 어떤 힘든 일이든 그 일을 유발한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힘듦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고통의 강도는 달라지고, 더 나아가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풍자와 해학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김미조 칼럼니스트
김미조는 소설을 쓰면서 인문학책을 기획, 집필하고 있다. 장편소설 『천국의 우편 배달부』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니는 혼자가 아이다』,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피노키오가 묻는 말』, 수필집 『엄마의 비밀정원』, 인문서 『국제 분쟁, 무엇이 문제일까.』, 『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등이 있다. 또, 포천 문화재단이 주관한 뮤지컬 『화적연-용신과 도깨비 공주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김미조는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가 가능한 작가로, 앞으로도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김미조 칼럼니스트
김미조는 소설을 쓰면서 인문학책을 기획, 집필하고 있다. 장편소설 『천국의 우편 배달부』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니는 혼자가 아이다』,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피노키오가 묻는 말』, 수필집 『엄마의 비밀정원』, 인문서 『국제 분쟁, 무엇이 문제일까.』, 『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등이 있다. 또, 포천 문화재단이 주관한 뮤지컬 『화적연-용신과 도깨비 공주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김미조는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가 가능한 작가로, 앞으로도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기사 정정 신청뉴스제보 jebo@newsr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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