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조의 고전 이야기] 어이쿠, 이가 빠져버렸네.
AI 요약[편집자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사회적 자본인 지식과 경험·노하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본 코너는 ‘종횡무진포럼·가디언·펄스㈜·한가향 ’이 공동후원 합니다. 어이쿠, 이가 빠져버렸네. -김창흡, 낙치설(落齒設) 이가 빠...
![[김미조의 고전 이야기] 어이쿠, 이가 빠져버렸네.](https://img.newsro.kr/wp-content/uploads/2024/04/김미조-3타이틀771-x-434-픽셀.jpg)
[편집자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사회적 자본인 지식과 경험·노하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본 코너는 ‘종횡무진포럼·가디언·펄스㈜·한가향 ’이 공동후원 합니다.
어이쿠, 이가 빠져버렸네. -김창흡, 낙치설(落齒設)
이가 빠졌지만, 원래 내 이는 아니었습니다.
“아!”
식사 중 윤 선생님이 가벼운 탄성을 내지르신다.
“이가 빠졌네.”
뒤이어 어이없다는 듯 웃으시는데, 선생님의 윗니 중 하나가 검은 구멍이 되어 있다.
“에구, 괜찮으세요? 혹시 크라운 치료받으신 게 떨어지신 거예요?”
“응. 아네?”
수년 전 일이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친구가 지렁이 모양의 젤리를 건넸다. 그러면서 ‘아는 사람이 이거 먹다가 이가 빠졌대.’라고 말했다. 당시엔 그 말이 왜 그렇게 우스웠던지 ‘하하하, 진짜?’ 그러면서 젤리를 깨물었다. 순간, 뭔가가 쑥 빠져나온 느낌이다. 이다. 크라운 치료로 입힌 이가 통째로 빠져 나와버린 것이다.
생니가 빠진 것이 아니기에 아프진 않았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가 빠진 것을 통보하고 웃고 말았다. 당시 내게서 빠져나간 이는 어금니 바로 옆쪽이었기에 크게 입을 벌리지 않는 한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에게서 빠져나간 이는 대문 격인 앞니 오른쪽 옆이다. 말씀하실 때마다 딱 이 크기만큼의 검은 구멍이 계속 보인다.
“하하하. 빠진 이 사이로 음식이 쑥 낀다. 껴.”
크라운 치료를 받은 경험이 없어 한가득 걱정스러워했던 박도 그만 웃고 만다. 우리 셋은 그리스 여행 중이었다. 그러니까 이가 빠졌다고 당장 치과에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 옛날에는 크라운 치료가 없었습니다만.
치과 치료를 받던 중 ‘내가 조선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그 시대에 살았다면 심한 치통을 생으로 견뎌내야 했을 것이고, 이가 빠진 후엔 별다른 도리없이 그대로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얼마나 고역일지 미루어 추측만 했는데, 이를 세세하게 표현한 작품이 있다. 김창흡의 <낙치설(落齒設)>이다.
사람이 체력을 유지하고 기르는 데는 음식만 한 것이 없는데, 음식을 먹으려면 이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가 빠져버리니 빠진 이 사이로 물이 새고 밥은 딱딱하여 잘 씹히지 않으며, 간간이 고기라도 씹으려면 마치 독약을 마시는 사람처럼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책상 앞에 앉아도 빠진 이 때문에 어려움에 부닥친 내 신세가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쇠약한 몸이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매미의 배에 거북의 창자 꼴이 될 것이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그러니 먹고 마시는 일은 되어 가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낙치설
김창흡(1653년~1722년)은 조선 중기 선비다. 영의정까지 지낸 아버지 김수항(金壽恒)의 명을 받드느라 스무 살에 치른 과거에서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그뿐이었다. 이후론 과거 시험을 친 적이 없으며, 그의 능력을 알아본 이가 그를 천거해도 벼슬길엔 발을 디디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연을 벗 삼으며 글을 읽고 문에 힘썼을 뿐이다. 그런데 이가 빠졌다. 낙치(落齒)는 말 그대로 ‘늙어서 이가 빠진 것’을 뜻한다. 가뜩이나 노쇠한데 음식 섭취까지 쉽지 않으니 작가의 말 따나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런데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바로 책 읽기다.
그 좋아하는 책 읽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시골풍경을 바라보면서 책이나 흥얼거리는 것으로 말년을 보내려 했다. 그리하여 캄캄한 밤에 촛불로 길을 비추듯, 인간의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렇게 마음먹고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가 빠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마치 깨진 종소리 같아서, 빠르고 느림이 마디지지 못하고, 맑고 탁한 소리가 조화를 잃고, 칠음(七音)의 높낮이도 분간할 수 없으며 팔풍(八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낭랑한 목소리를 내 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으나 끝내 소리가 말려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내 모양이 슬퍼서 책 읽는 일을 그만둬 버렸다. 그러고 나니 마음은 더 게을러져 갔다. 결국엔 인간의 근본을 찾으려 했던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이가 빠진 후에 나를 가장 슬프게 한 일이다.
-낙치설
‘어차피 글은 눈으로 읽는 거 아닌가. 비록 이는 빠졌어도 눈은 멀쩡하니 그냥 글을 읽으면 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눈으로만 글을 읽지 않았다. 소리 내어 읽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속담이 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책을 그저 눈으로만 읽었다면, 3년이 아니라 10년을 서당에서 살아도 개는 풍월을 읊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당개가 풍월을 읊을 수 있게 되었다면, 그건 매일 글 읽는 소리를 들어서다. 실제로 그런 능력을 지닌 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글을 소리 내어 반복해 읽는 이유는 단순히 그 뜻을 이해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그 뜻을 내면화해 자연스럽게 실천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조선 시대 선비였던 김창흡은 낭랑하게 책을 읽지 못하는 자신에게 깊은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난날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일생을 돌이켜 보니 비록 늙었어도 몸이 가볍고 건강함을 자신했었다. 걸어서 산에 오르거나, 종일 먼 길을 말을 타고 달리거나, 때로는 천 리 길을 가도 다리가 아프다거나 등이 뻣뻣해지는 걸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내 또래들과 비교하곤 나만 한 사람이 드물다고 생각하며 자못 기분이 좋았다. 이미 노쇠한 것도 잊고 오히려 건강하다고 잘못 생각하고는, 어떤 일을 당해도 겁내지 않고 달려들어 처리했으며, 신바람이 나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달려갔다가 반드시 녹초가 되어서야 돌아오곤 하였다. (중략)이는 아마도 나이에 따라 분명히 체력의 한계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겁 없이 살아온 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낙치설
설(說)은 고려 시대에 등장한 한문 문체의 한 종류로, 그 구성은 대체로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방식을 취한다. 낙치설 역시 이러한 구성법을 사용하고 있기에 ‘이가 빠진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돌아본다. 어떠한 일이든 그 일이 일어난 것엔 원인이 있으니 그 원인을 찾으면 그에 맞는 해결법도 찾을 수 있기 마련이다. 김창흡은 이러한 생각에 앞으로 자신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낸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노인으로서의 분수를 지켜야겠다. (중략)
얼굴이 일그러졌으니 조용히 들어앉아 있어야 하고, 말소리가 새니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고, 고기를 씹기 어려우니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하고,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지 못하니 그냥 마음속으로나 읽어야 할 것 같다. (중략)
늙음을 잊고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경망스러운 사람이다. 그렇다고 늙음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자는 속된 사람이다. 경망스럽지도 않고 속되지도 않으려면 늙음을 편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략)
눈으로 보는 감각의 세계에서 벗어나, 일찍 죽는 것과 오래 사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이 인생을 즐겁게 사는 길이며 근심을 떨쳐 버리는 방법이 될 것이다.
-낙치설
노쇠하진 않았습니다만.
김창흡은 ‘빠진 이’를 계기로 ‘늙었음에도 과신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하고, ‘늙음’을 철학적으로 성찰한다. 한편,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는 늙지도 않았는데.’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 다행이다.’는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내게도 이유는 있다. 타고나기를 건강한 이가 아닌 데다 단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치과 의사는 ‘어금니가 썩기 쉬운 모양’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는데, ‘썩기 쉬운 이’는 이의 위쪽 부분이 매끈하지 않고 골이 많은 것을 뜻한다고 한다. 아무튼 ‘이’는 내 신체 부위 중 가장 약한 부위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정보를 더 많이 찾게 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경향을 김창흡은 이렇게 표현한다.
결국, 빠진 이가 나에게 경고해 준 바가 참으로 적지 않다고 하겠다.
-낙치설
*김미조 칼럼니스트
김미조는 소설을 쓰면서 인문학책을 기획, 집필하고 있다. 장편소설 『천국의 우편 배달부』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니는 혼자가 아이다』,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피노키오가 묻는 말』, 수필집 『엄마의 비밀정원』, 인문서 『국제 분쟁, 무엇이 문제일까.』, 『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등이 있다. 또, 포천 문화재단이 주관한 뮤지컬 『화적연-용신과 도깨비 공주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김미조는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가 가능한 작가로, 앞으로도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김미조 칼럼니스트
김미조는 소설을 쓰면서 인문학책을 기획, 집필하고 있다. 장편소설 『천국의 우편 배달부』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니는 혼자가 아이다』,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피노키오가 묻는 말』, 수필집 『엄마의 비밀정원』, 인문서 『국제 분쟁, 무엇이 문제일까.』, 『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등이 있다. 또, 포천 문화재단이 주관한 뮤지컬 『화적연-용신과 도깨비 공주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김미조는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가 가능한 작가로, 앞으로도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기사 정정 신청뉴스제보 jebo@newsr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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